며칠 전 오랜만에 시골집을 들렀다. 마당의 들마루에 앉아 삼백년 세월을 넘어온 한옥의 용마름을 쳐다보고 있자니, 추녀 밑에 제비 한 마리가 매달려 있다. 사람이 와도 놀라지 않고 벽면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면서 무슨 일인지 열중이다. 세월도 모른 채, 철도 잊어버린 채 바쁘게 살다보니 지금이 제비 돌아오는 계절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 강남으로 갔던 제비는 벌써 돌아와 있었고, 이제 알을 낳을 둥지를 마련하려고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들어보니 이미 며칠 전부터 제비 한 마리가 처마 밑 여기저기에 매달려 뭔가 열심히 탐색 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알을 낳아 새끼를 까서 키울 집을 지으려면 마땅히터를 보고, 주변 상황을 살피는 건축주의 세심함이 필요할 것이다. 이 땅에 한옥을 지은 모든 사람들도 사실 저렇게 제비처럼터 잡는 것부터 심혈을 기울여 풍수를 보고 집을 짓고 그리고 철따라 벽을 칠하고 문을 바르고 군불 지피며 집과 자신을 간수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수백 년이 지났어도 그 자태를 잃지 않은 한옥들이 아직은 금수강산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다시 며칠이 지나서 집터를 찾던 제비가 생각나서 집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우리 한옥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느냐고. 집을 지키던 사람의 대답은 실망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한옥은 제비의 터 잡기 심사에서 탈락한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집안에 사람이 많아 소란스러운 것도 아니고. 집이나 처마 밑이 허술한 것도 아니고. 비가 새는 것도 아니고. 며칠 째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이 집은 얼마 전에 벽면을 수리를 하였다.
아마도 옛날 방식으로 순수하게 황토로만한 것이 아니라, 황토색깔의 시멘트를 사용 했으리라. 제비가 벽면에 달라붙어 사흘 동안이나 탐색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벽에진흙을 튼튼하게 바를 수 있는가를 살펴보 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벽은 진흙 접착에 부적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던 모양이다. 단순히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한옥도 현대적 기술로만 다스린다면 자연과 함께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문화와 자연을 대립 구조로 본다. 자연을 밀어낸 자리에 인간의 문화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는 밀림이나 사막, 강 유역을 밀어내고 도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자연에 밀고 들어가는 방법은 민족에 따라 다양하다. 즉 문화가 들어서면서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고, 살짝 밀쳐 낼 수도 있고, 자연과 함께 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자연과 사귈 수도 있다. 자연과 사귀어 가는 대표적 문화권으로는 인디언 문화가 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면서, 자연과 사귀는 문화를 유유히 간직해 왔다. 적어도 백인들의 문화가 아메리카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옥문화는 어떻게 자연 속에 들어서는가? 한옥은 한국의 가장 한국적인 주거문화이다. 한옥은 인간이 떠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그대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한옥은 자연에 널려 있는 나무와 흙과 돌로 지어졌으며, 거기다닥나무에서 나온 한지로 바르고 흙으로 구운 기와로 덮어 마지막 치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옥은 자연과 사귀는 집이다. 아래채 초가집 처마에는 참새들이 살고, 지붕 위에는 박 넝쿨이 살았다. 사랑채 높은 지붕 밑에는 박쥐들이, 처마 밑에는 제비들이, 심지어 말이나 소도 같은 지붕 밑에 살았다.
이제 한옥도 초가집도 별로 없지만 참새들도 다 어디로 가고 없다. 그래서 그런지 처마 밑을 뒤지며 참새 잡던 아이들도 이제는 덩달아 보이지 않는다. 자연과 사귀던 한옥이 사라질 수록, 자연도 인간과 멀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이 우리의 집 한옥과 멀어진다면, 결국 우리도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것으로 끝일까? 우리가 한옥을 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인간도 근본적으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 창 석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약력>
신창석(중요민속자료 제172호 청송 성천댁 소유자)
1957년 경북 청송 출생
1985년 경북대학교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며칠 전 오랜만에 시골집을 들렀다. 마당의 들마루에 앉아 삼백년 세월을 넘어온 한옥의 용마름을 쳐다보고 있자니, 추녀 밑에 제비 한 마리가 매달려 있다. 사람이 와도 놀라지 않고 벽면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면서 무슨 일인지 열중이다. 세월도 모른 채, 철도 잊어버린 채 바쁘게 살다보니 지금이 제비 돌아오는 계절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 강남으로 갔던 제비는 벌써 돌아와 있었고, 이제 알을 낳을 둥지를 마련하려고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들어보니 이미 며칠 전부터 제비 한 마리가 처마 밑 여기저기에 매달려 뭔가 열심히 탐색 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알을 낳아 새끼를 까서 키울 집을 지으려면 마땅히터를 보고, 주변 상황을 살피는 건축주의 세심함이 필요할 것이다. 이 땅에 한옥을 지은 모든 사람들도 사실 저렇게 제비처럼터 잡는 것부터 심혈을 기울여 풍수를 보고 집을 짓고 그리고 철따라 벽을 칠하고 문을 바르고 군불 지피며 집과 자신을 간수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수백 년이 지났어도 그 자태를 잃지 않은 한옥들이 아직은 금수강산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다시 며칠이 지나서 집터를 찾던 제비가 생각나서 집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우리 한옥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느냐고. 집을 지키던 사람의 대답은 실망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한옥은 제비의 터 잡기 심사에서 탈락한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집안에 사람이 많아 소란스러운 것도 아니고. 집이나 처마 밑이 허술한 것도 아니고. 비가 새는 것도 아니고. 며칠 째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이 집은 얼마 전에 벽면을 수리를 하였다.
아마도 옛날 방식으로 순수하게 황토로만한 것이 아니라, 황토색깔의 시멘트를 사용 했으리라. 제비가 벽면에 달라붙어 사흘 동안이나 탐색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벽에진흙을 튼튼하게 바를 수 있는가를 살펴보 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벽은 진흙 접착에 부적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던 모양이다. 단순히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한옥도 현대적 기술로만 다스린다면 자연과 함께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문화와 자연을 대립 구조로 본다. 자연을 밀어낸 자리에 인간의 문화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는 밀림이나 사막, 강 유역을 밀어내고 도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자연에 밀고 들어가는 방법은 민족에 따라 다양하다. 즉 문화가 들어서면서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고, 살짝 밀쳐 낼 수도 있고, 자연과 함께 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자연과 사귈 수도 있다. 자연과 사귀어 가는 대표적 문화권으로는 인디언 문화가 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면서, 자연과 사귀는 문화를 유유히 간직해 왔다. 적어도 백인들의 문화가 아메리카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옥문화는 어떻게 자연 속에 들어서는가? 한옥은 한국의 가장 한국적인 주거문화이다. 한옥은 인간이 떠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그대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한옥은 자연에 널려 있는 나무와 흙과 돌로 지어졌으며, 거기다닥나무에서 나온 한지로 바르고 흙으로 구운 기와로 덮어 마지막 치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옥은 자연과 사귀는 집이다. 아래채 초가집 처마에는 참새들이 살고, 지붕 위에는 박 넝쿨이 살았다. 사랑채 높은 지붕 밑에는 박쥐들이, 처마 밑에는 제비들이, 심지어 말이나 소도 같은 지붕 밑에 살았다.
이제 한옥도 초가집도 별로 없지만 참새들도 다 어디로 가고 없다. 그래서 그런지 처마 밑을 뒤지며 참새 잡던 아이들도 이제는 덩달아 보이지 않는다. 자연과 사귀던 한옥이 사라질 수록, 자연도 인간과 멀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이 우리의 집 한옥과 멀어진다면, 결국 우리도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것으로 끝일까? 우리가 한옥을 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인간도 근본적으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 창 석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약력>
신창석(중요민속자료 제172호 청송 성천댁 소유자)
1957년 경북 청송 출생
1985년 경북대학교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