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청참 [聽讖]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청참 [聽讖]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黃 平 雨

 

약력 : 1961년생, 진해출생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종로역사(육의전)박물관 부관장
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MBC 느낌표“위대한 유산 74434”공동 진행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는 설날을 생각할 수 있다. 설날은 먼저 가신 조상과 자손이 모처럼 함께하는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시와 산업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생활의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고대인들은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고,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다.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 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며,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입은 젊은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갈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했다 한다.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관서)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그 소리로써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
필자가 오늘같이 기쁜“문화유산신문” 창간일에 설날 이야기를 들고 나왔는가 하면“문화유산신문”창간일이 마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같은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업사회를 사는 우리가 과거의 설날 풍속을 다 기억하고 따라할 수 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덕담, 나누어 먹는 풍습만은 지켜나갔으면 한다. 이러한 역할을 해줄“문화유산신문”이 창간하는데 설날을 생각한다 해서 너무 과하다면 너무 기뻐서 설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것으로 해두려한다.
최근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문화의 보존과 연구에 관한 노력과 열정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국민들 스스로 우리전통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문화유산 행정과 정책이 변화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될 수 있다. 문화재 행정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다른 변화는 정부 출범 이후 문화재정책에서 일부 제한적, 형식적,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예전 권위주의 시대에는 국가권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차원에서 문화정책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다양한 역사해석과 문화해석이 국가정책에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과 더불어 사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었고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러한 시민사회의 의견들이 조금씩 정부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화유산신문은 국가기관의 문화유산 행정·정책 수립에 관한감시와 정책대안을 해야한다. 시민사회의 순수한 열정과 연구 성과들을 정책으로 승화시켜나가는 노력들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새해 첫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소리를 듣고 청참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매일매일“문화유산신문”의 소리를듣고 많은 사람(국민, 공무원, 문화재종사자 등등)들이 청참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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