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중 정원가 예찬 6 ] 죽림칠현, 산수전원사상을 원림에 받아들이다



중국의 전통원림은 조성자의 신분계층이 제한적이면서도 그 계층별 특징이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현존하는 대부분의 원림 조영자가 특정계층 즉 황제귀족문인상인 등에 국한되어 있으며 각 원림은 각기 조영자의 성향에 따라 나름대로 특징과 의미를 달리하고 있다.

 

 원림사상의 근간을 이루던 자연숭배 사상은 산수화산수시와 결합되어 중국 전통원림에 반영되어 왔고  그것은 원림 내 단순한 자연의 재현(再現)이 아닌 예술의 경지로까지 격상 된다이를 중국인들은 의경(意境)이라 칭하며 전통원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여겼고 여기에 고대의 철학이 결합하여 천인합일이라는 원림의 조영 원리가 탄생하며 통일국가인 한()나라를 통하여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189년 중국은 여러 지역과 계층들에서 난이 발발하여 결국 동한(東漢)왕조가 멸망하게 된다한나라의 와해 이후 중국은 400여년이라는 기나긴 전쟁의 시기를 맞이한다이러한 상황은 위진남북조시대에까지 이어졌으며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하여 기존 한나라의 일원화된 정치 및 제도는 서서히 파괴되었고 경학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따라서 유학이 자연스럽게 모든 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유학 이외에도 유교도교불교 등의 학문적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소위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시기에는 사상사 측면의 학문적 연구와 논쟁이 활발하였고 자유로웠으며 그에 힘입어 예술 또한 발전하였다특히 이시기 현학 (玄學도가의 학문)은 사회적 혼락과 맞물려 문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문사들로 하여금 청렴한 생활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발전을 도모케 하였다훗날 일컫는 위진풍류(魏晉風流)’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배태되었다고 볼 수 있다대다수의 문사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맞이하여 임천(林泉)에 은거하여 전원과 산수에 의탁하여 즐거움을 삼았다산수 전원시자연 산수화가 번성하였고 이러한 산수시화(詩畵)의 발전을 통해 자연산수전원 사상이 반영된 원림의 시원과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9면-특별기고 (2).JPG

 

 중국의 자연산수전원 사상을 원림에 적용하고 이끈 대표적인 인물들이 위나라 개국시기(240-249)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죽림칠현은 도가의 대표적 인물로써 정치사상과 생활태도는 동일하지 않았으나 그들 대부분은 기존의 경전을 버리고 노장사상을 숭상하였고 예법을 경시하고 세속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았다세설신어에는 그들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을 기록하고 있다.

 

 ≪世說新語;임탄편≫陳留阮籍、?國?康、河內山濤三人年皆相比,康年少亞之。預此契者,沛國劉伶、陳留阮咸、河內向秀、琅邪王戎。七人常集於竹林之下,肆意?暢,故世謂 竹林七賢’.”(진유지역의 완적(阮籍), 초국의 혜강(?康), 하내지역의 산도(山濤이 세 사람의 나이는 서로 비슷하고 혜강이 가장 어리다이외에 패국의 유령(劉伶), 진유의 완함(阮咸), 하네지역의 향수(向秀), 낭야의 왕융(王戎)이 이 모임에 참석하였고 이들 칠인은 항상 죽림에 모여 술을 마셨으며 세인들은 이들을 죽림칠현이라 불렀다이외에도 魏氏春秋竹林名士傳竹林七賢論 등에서 이들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죽림칠현은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조용한 무위적 삶의 일환으로서 현(운대산(雲臺山일대의 죽림에 모여 노래와 술을 즐겼다자연에 기대어 그들은 탈속의 생활과 더불어 뛰어난 작품으로서 위진의 문인들을 선도 하였고 그것은 중국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이르렀다.


죽림칠현과 영계지 벽화(남조무덤 출토)


 특히 죽림칠현 중 유령은 중국 건축 및 원림 예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진서(晉書)에 따르면 他經常用乘鹿車,手裡抱著一壺酒,命僕人提著鋤頭?在車子的後面?,?說道我若醉死便就地把我埋葬了.”(그는 항상 사슴마차를 타고 한 손에는 한 병의 술을 든 채 달렸다하인에게는 그 뒤를 괭이를 들고 마차의 뒤를 따라 달리게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내가 술에 취해 죽거든 바로 나를 매장하라 하였다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여 술을 목숨과 같이 생각하였다)劉伶?縱酒放達,或脫衣裸形在屋中,人見譏之。伶曰:我以天地?棟宇,屋室??衣。諸君何?入我?中!”(유령은 항상 술을 마시고 그 어떤 것도 관여치 않았다어느 때는 옷을 벗은 채 있곤 하였다.
어느날 이를 본 사람이 그를 비웃자 그가 말하길천지가 다 내 집이요내 집이 내 저고리와 바지가 되거늘 어찌하여 자네가 내 옷 안에 들어와 있는가!)라 하였다그는 천지를 집으로 여기고 대자연을 대건축으로 생각하여 자연과 물아일체를 이루고 천인합일의 사상과 원림의 경계를 두지 않는 진정한 산수풍경원림을 이루었다또한 혜강은 평소 철 다루는 일을 좋아하여 후원에 대장간을 중심으로 원림을 조성하였다대장간이 있는 후원에 한그루의 잎이 무성한 버드나무를 심고 그 아래 산천을 끌어들여 버드나무를 돌아 흐르게 한 후 하나의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文士?》이러한 죽림칠현의 사상은 훗날 백거이왕희지 등의 원림 조영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정신과 이상 해탈과 자유에 경지에 이른 죽림칠현의 산수전원사상은 중국의 전통문예건축원림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신현실  
북경대학교 세계유산센터
 



 News & Company

법인명 : 주식회사 리몽 | LEEMONG corp.

등록번호 : 강원 아00093 |  발행일자 : 2011. 9. 5

발행인 :  이원석 | 편집인 : 이진경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미 기사배열 책임자 : 이원석

[25464]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강릉선교장

63, Unjeong-gil, Gangneung-si, Gangwon-do,[25464] Republic of Korea

Email : kchnews@naver.com T : 02-733-5270 F : 02-6499-9911

 ⓒ문화유산신문 당사의 기사를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링크, 게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19 KCHN All rights reserved. Hosting &  Powered by Leemong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