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진 목각판을 ‘각자(刻字)’ 또는 ‘서각(書刻)’이라 하고,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을 ‘각자장(刻字匠,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또는 ‘각수(刻手)’라고 한다.
각자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인쇄를 목적으로 목판에 글자를 좌우로 바꿔서 새기는 반서각(反書刻)과 건축물에 거는 현판용으로 글자를 목판에 그대로 새기는 정서각(正書刻)이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각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바위나 동굴에 그림을 새겨놓은 암각화나 동굴 벽화가 있었으며,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는 돌이나 나무 등에 글자를 새겨 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광개토왕릉비, 중원고구려비, 고구려 평양성벽석각, 진흥왕순수비 등 돌에 새긴 석각이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각자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경전을 펴내기 위한 목판인쇄술이다. 지금가지 남아있는 목판본으로는 8세기 중엽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국보 제126호로 지정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내부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이다.
<해인사 대장경판 사진제공=문화재청>
고려 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을 간행하면서 목판인쇄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목각판으로 알려진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국보 제32호)’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법문을 실어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르는 이 대장경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까지 세종 28년(1446)에 만든 ‘훈민정음(訓民正音, 국보 제70호)’을 비롯해 수많은 목판 인쇄물이 간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진술과 새로운 인쇄술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목판 인쇄는 급속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근래에 이르러서는 서양인쇄술의 도입으로 급속히 쇠퇴하여 건물의 현판이나 유명 서예가의 글씨를 새긴 판각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각자하는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각자장이 목판에 각자를 하기 위해서는 판목고르기, 연판(鍊板), 각자 등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판목으로는 대추나무·배나무·가래나무·박달나무·자작나무·산벚나무·후박나무 등을 주로 사용한다.
각자하기 적당한 나무가 정해지면 적당한 크기와 두께로 나무를 잘라서 결을 삭히는 연판 과정에 들어간다. 나무가 뒤틀리거나 썩지 않게 나무결을 삭히는 작업으로는 바닷물에 담그는 방법과 물에 넣어두는 방법, 그리고 한동안 물에 담가두었다가 소금물에 삶는 방법 등이 있다.
길게는 수 년에 걸친 연판 작업이 끝나면 판목에 각자하기 쉽도록 매끄럽게 다듬은 후 종이에 글자를 써서 판목에 뒤집어 붙이고 들기름을 투명하게 발라서 글씨가 잘 비치도록 한다. 그리고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목판에 글자가 다 새겨지면 여기에 먹을 칠해 인출을 하게 된다.
만약 잘못 새긴 글자가 있는 경우에는 잘못된 글자 부분만 파내어 다른 나무를 박고 다시 새기기도 한다.
<반서각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목판은 활자본과는 달리 한 번 새겨 놓으면 간행량에 제한받지 않고 찍어낼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이 있으나 해충과 습기에 약해 보관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김각한 보유자 작품 - 실사구시 사진제공=문화재청>
각자장은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으며 각자장 보유자로는 선대로부터 각자 기술을 이어받아 전통적인 각자법을 전수해 온 오옥진(吳玉鎭) 선생이 있었으나 지난 2014년 작고하셨다. 현재 각자장 보유자로는 고 오옥진 선생의 제자 김각한(金閣漢) 선생이 있으며 그밖에 강원도무형문화재 16호 이창석(李昌石) 선생 등이 오랜 기간 작품 활동과 전승 활동을 통해 각자 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재재단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진 목각판을 ‘각자(刻字)’ 또는 ‘서각(書刻)’이라 하고,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을 ‘각자장(刻字匠,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또는 ‘각수(刻手)’라고 한다.
각자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인쇄를 목적으로 목판에 글자를 좌우로 바꿔서 새기는 반서각(反書刻)과 건축물에 거는 현판용으로 글자를 목판에 그대로 새기는 정서각(正書刻)이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각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바위나 동굴에 그림을 새겨놓은 암각화나 동굴 벽화가 있었으며,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는 돌이나 나무 등에 글자를 새겨 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광개토왕릉비, 중원고구려비, 고구려 평양성벽석각, 진흥왕순수비 등 돌에 새긴 석각이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각자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경전을 펴내기 위한 목판인쇄술이다. 지금가지 남아있는 목판본으로는 8세기 중엽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국보 제126호로 지정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내부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이다.
<해인사 대장경판 사진제공=문화재청>
고려 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을 간행하면서 목판인쇄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목각판으로 알려진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국보 제32호)’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법문을 실어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르는 이 대장경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금속활자가 나오기 전까지 세종 28년(1446)에 만든 ‘훈민정음(訓民正音, 국보 제70호)’을 비롯해 수많은 목판 인쇄물이 간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진술과 새로운 인쇄술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목판 인쇄는 급속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근래에 이르러서는 서양인쇄술의 도입으로 급속히 쇠퇴하여 건물의 현판이나 유명 서예가의 글씨를 새긴 판각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각자하는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각자장이 목판에 각자를 하기 위해서는 판목고르기, 연판(鍊板), 각자 등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판목으로는 대추나무·배나무·가래나무·박달나무·자작나무·산벚나무·후박나무 등을 주로 사용한다.
각자하기 적당한 나무가 정해지면 적당한 크기와 두께로 나무를 잘라서 결을 삭히는 연판 과정에 들어간다. 나무가 뒤틀리거나 썩지 않게 나무결을 삭히는 작업으로는 바닷물에 담그는 방법과 물에 넣어두는 방법, 그리고 한동안 물에 담가두었다가 소금물에 삶는 방법 등이 있다.
길게는 수 년에 걸친 연판 작업이 끝나면 판목에 각자하기 쉽도록 매끄럽게 다듬은 후 종이에 글자를 써서 판목에 뒤집어 붙이고 들기름을 투명하게 발라서 글씨가 잘 비치도록 한다. 그리고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목판에 글자가 다 새겨지면 여기에 먹을 칠해 인출을 하게 된다.
만약 잘못 새긴 글자가 있는 경우에는 잘못된 글자 부분만 파내어 다른 나무를 박고 다시 새기기도 한다.
<반서각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목판은 활자본과는 달리 한 번 새겨 놓으면 간행량에 제한받지 않고 찍어낼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이 있으나 해충과 습기에 약해 보관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김각한 보유자 작품 - 실사구시 사진제공=문화재청>
각자장은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으며 각자장 보유자로는 선대로부터 각자 기술을 이어받아 전통적인 각자법을 전수해 온 오옥진(吳玉鎭) 선생이 있었으나 지난 2014년 작고하셨다. 현재 각자장 보유자로는 고 오옥진 선생의 제자 김각한(金閣漢) 선생이 있으며 그밖에 강원도무형문화재 16호 이창석(李昌石) 선생 등이 오랜 기간 작품 활동과 전승 활동을 통해 각자 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