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보성 강골마을(寶城 江谷마을)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 득량만과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전라남도 보성군 강골마을은 우리 전통의 멋을 지키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1937년 방조제가 놓이기 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강골(江谷)’이란 이름을 붙였으며 ‘강동(江洞)’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은 11세기 중엽 양천허씨(陽川許氏)가 처음 터를 잡은 뒤, 원주이씨(原州李氏)를 거쳐 16세기 말에 광주이씨(廣州李氏)가 들어와 정착하면서 광주이씨 집성촌이 되었으며, 이 마을의 입향조 이유번(李惟蕃)의 네 아들을 중시조로 각각 소문중으로 나눠져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강골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이금재 가옥(李錦載 家屋), 이용욱 가옥(李容郁 家屋), 이식래 가옥(李湜來 家屋), 열화정(悅話亭) 등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4곳을 포함해 19세기 이후 지어진 30여 채 집들은 담쟁이덩굴과 대나무로 뒤덮인 돌담길로 이어지면서 전형적인 우리 옛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금재가옥>


 먼저 보성 이금재 가옥(寶城 李錦載 家屋,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길 36-5, 중요민속문화재 제157호)을 찾아간다. 탱자나무 울타리 골목을 따라 대문간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남향으로 앉은 안채, 서쪽으로 작은 곳간채, 남쪽으로 큰 곳간채가 있다. 1900년 전후에 지어진 안채는 정면에서 보면 ‘ㅡ’자형으로 보이지만 ‘?’자형으로 날개가 뒤로 돌출되어 있다. 왼쪽부터 부엌·큰방·대청 2칸과 끝에 작은방이 있다. 앞쪽에는 모두 툇마루를 깔았으나 부엌 앞은 토광을, 동남쪽에는 책광을 만들었다. 대청과 마루 사이에는 문이 있으며, 작은방의 위·아랫방 사이에도 문이 있다. 작은방은 일종의 사랑방 또는 선비의 공부방으로 사용했다. 안채의 맞은편에 위치한 5칸 규모의 큰 곳간채는 ‘一’자형으로 안마당보다 낮은 곳에 야트막하게 지어서 안채의 좋은 전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고려했다. 서쪽칸은 토광이고, 나머지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문간채는 가운데에 문을 두고 북쪽에 마구간을, 남쪽에는 문칸방을 설치했다.


<이용욱가옥>


 마을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보성 이용욱 가옥(寶城 李容郁 家屋,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길 36-6, 중요민속문화재 제159호)은 1835년 이용욱의 5대조인 이재 이진만(李齋 李鎭晩)이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집 앞에 넓은 연지를 비롯해 솟을대문을 가진 문간채, 안채, 사랑채, 곳간채, 별당 등으로 구성된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부농답게 넓은 사랑마당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 중문간채와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맞대고 있다. 중문가채를 통해 안채로 들어서면 안마당 왼쪽 앞에는 곳간채를, 오른쪽에는 별당채를 배치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중문간채를 통하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하도록 나누어져 있다. 대문간채는 5칸으로 중앙에 솟을대문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이 여러 개 있어 머슴이나 일꾼들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사랑채는 남도식 구성으로 왼쪽부터 부엌·사랑방·사랑윗방·대청의 순으로 배치하고, 부엌과 사랑윗방 뒷쪽에는 툇마루가 있고, 부엌 위쪽에는 ‘공루’라는 수장공간을 설치해 생활용품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사랑방부터 대청까지 앞쪽에 툇마루가 있다. 정면 5칸 ‘一’자형 안채는 전후좌우면에 퇴를 두른 규모가 매우 큰 건물로 부엌 옆에 큰방 ·대청 ·작은방이 있으며, 큰방부터 작은방 앞까지는 툇마루를 설치했다. 작은방은 옆쪽에 출입문을 달아서 또 다른 공간으로 꾸몄다. 안채 오른쪽 ‘연정(蓮亭)’ 이란 현판이 걸린 별당채는 방 1칸과 마루 1칸을 각각 두고 사방 툇마루를 둔 정자와 같은 건물이다. 안채 앞에는 곡물을 보관하기 위한 정면 4칸의 큼직한 곳간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용욱 가옥 담장 너머에는 ‘소리샘’이라 부르는 특이한 우물이 있다. 이 우물가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담장 너머 집주인은 우물가에서 들리는 마을 소식을 귀담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부잣집을 가만히 엿볼 수도 있었을 터. 바로 마을 사람들의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식래가옥>


 보성 이식래 가옥(寶城 李湜來 家屋,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길 36-8, 중요민속문화재 제160호)은 이용욱 가옥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집으로 1891년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쪽 담장을 따라 들어가면 조그만 초가대문 너머로 너른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울창한 대숲에 둘러싸인 사랑채, 안채, 곳간채가 있다. 특이하게도 사람이 사는 살림채엔 초가를 얹고 곡식을 넣어두는 곳간채와 장독대의 문간에는 기와를 얹었다. ‘ㅡ’자형 초가집 안채는 왼쪽부터 앞쪽에는 작은방, 뒤쪽에는 뒷방이 있다. 옆에는 대청, 큰방이 있는데 방 뒤쪽 아래에는 아궁이, 위에는 다락을 두었다. 대청과 큰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고, 오른쪽에는 후에 지은 방이 위·아래로 있다. 사랑채는 방을 가운데 두고 대청을 끝에 두는 남도식 가옥으로, 왼쪽부터 부엌·사랑아랫방·윗방·대청이 있다. 부엌 앞에는 부엌방이 있고, 대청은 개방되어 있다. 기와를 얹은 곳간채는 건물이 우람하고 커서 안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왼쪽 3칸은 곳간이고 오른쪽 1칸은 마루가 설치된 별도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안마당 한쪽에 장독대를 마련하고 문간에 기와를 올리고 별도의 담장을 쌓았다. 대문간은 초가지붕으로 근래에 바깥에 화장실을 덧붙여서 ‘ㄱ’자형이 되었다.


<열화정>


 강골마을의 백미, 보성 열화정(寶城 悅話亭,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길 32-17, 중요민속문화재 제162호)은 아름다운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 뒤편 깊숙한 대숲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푸른 대숲과 함께 다양한 나무가 함께 어울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동백꽃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열화정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특별히 조경을 하지는 않았지만 ‘ㄱ’자형 연지와 정자, 각종 수목 등 우리나라 전통정원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이 정자는 1845년(헌종 11)에 이용욱 가옥을 건립한 이재 선생이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많은 석학과 학문을 논하기도 하고 훌륭한 의병열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열화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으로 가로칸 가운데 2칸에 방이 아래·위로 있고, 세로칸은 누마루를 배치했다. 방 앞·뒤에도 누마루가 있으며, 아랫방 뒤는 골방이고 방 아래쪽에는 불을 지피기 위한 공간이 있다.

 

 할머니 집 같은 편안함이 묻어나는 강골마을. 꼬불꼬불 이어진 마을길을 따라 한가로이 걸으며 서걱서걱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보기도 하고,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몇 번의 방문이 이런 여유로움을 가져다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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