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채 >
<사랑채>
大烹豆腐瓜薑菜 최고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71세에 쓴 주련(柱聯)
서산과 해미를 이어주는 길목에 하천을 건너는 ‘한다리(大橋)’가 있었던 음암면 ‘한다리 마을’은 남쪽 전방으로 대교천(大橋川)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으며, 뒤편은 나지막한 야산이 펼쳐져 있는 사람이 살기 편안한 곳이다.
한다리 마을은 고려 말 성리학자인 상촌 김자수(桑村 金自粹)의 5대손 김연(金堧, 1494~ ?)과 그의 아들 김호윤(金好尹, 1534~ ?)이 터를 잡아 세거하면서 경주김씨(慶州金氏) 16대를 이어온 터전이다. 원래 이 집안은 경북 안동에서 살았고 김연은 한양에서 살았다. 김연은 무과 급제 후 서흥부사가 되어 임꺽정(林巨正)을 토벌하고 안주목사를 지낸 인물로 난을 평정하고 얻은 사패지를 근거로 약 500년 전 이곳에 입향, 한다리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경주김씨가 서산에서 대표적인 가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김연의 5대손 김적(金積, 1564~1646)부터였다. 그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김홍욱의 후손이 서산에서 한다리 김씨 가문을 부흥시켰다. 김연의 7대손 김한구(金漢?, 1723~1769)의 딸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로 책봉되어 정치에 직접 관여하고, 많은 영상과 정승을 배출함으로써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 마을로 들어서면 정순왕후가 출생해 왕비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정순왕후 생가(貞順王后 生家, 충남 기념물 제68호)와 작은댁인 서산 김기현 가옥(瑞山 金基鉉 假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99호, 충남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정순왕후 생가는 조선 효종 때 승지와 예조참의 등을 지낸 김홍욱이 효종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가 노부를 모시고 있음을 알고 아버지인 김적에게 왕이 내린 집으로 효종 시절인 1649∼1659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방문은 서산 김기현 가옥이다. 김기현 가옥은 건축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중반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솟을대>
<솟을대문>
최근 들어 새로 복원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후면이 바로 보이고 그 왼쪽으로 행랑채를 배치했다. 오른쪽으로 중문간채와 초당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하고 그 사이에 협문을 두었다. 사랑채 뒤편에 ‘ㅁ’자형 안채를 두어 외부공간(남자들의 공간)과 안공간(아녀자를 위한 공간)을 협문과 담으로 엄격하게 구분해 놓았다.
사랑채는 안채 오른쪽 끝에 수직으로 연결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형 건물로 대청마루가 없는 대신 크고 작은 방 2개를 배치하고 앞뒤로는 툇마루를 두었다. 특히 사랑채 전면에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차양을 설치해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과 비를 피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들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차양지붕은 사랑채 1칸 앞에 팔모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얹었다. 앞면은 부연을 단 겹처마로, 뒷면에는 홑처마를 달아 앞쪽을 더 길게 처리했다.
사랑마당 정면에 있는 행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ㅡ’자형 건물이다. 원래 이 건물은 가운데 곳간과 부엌을 두고 좌우로 방과 큰 곳간이 있었으나 현재 왼쪽 공간은 ‘기와박물관’을 만들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안채 부엌>
안채는 완벽한 ‘ㅁ’자형 구조로 배치했다. 몸채는 가운데 안대청과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 6칸의 커다란 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에 건넌방을 배치하고 전면에는 반 칸 폭의 개방된 툇마루를 달았다. 특히 6칸 부엌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기존의 재래식 아궁이와 가마솥은 그대로 살려두고 생활하기 편리하도록 현대적인 공간으로 바꿔, 여러 사람들이 모여앉아 식사뿐만 아니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넓게 꾸며 놓았다. 건넌방 아래쪽으로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과 아랫방을 두고 옆에 있는 안대문간과 연결되어 있다. 안대문간 오른쪽에는 사랑채의 사랑부엌을 배치하였다. 부엌 앞으로는 2칸의 광을 두었고, 사랑채와 붙은 맞은편 익랑에는 헛간, 마루방, 광을 배치했다. 안채 뒷마당에는 있는 3칸 초당은 방과 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부방으로 사용한 듯하다.

<김기현>
서울에서 살다가 10년 전 이곳에 내려오신 김기현(1940년생)?이효원 선생 부부, 평생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분들이시기에 시골생활이 힘드실 법도 한데 두 분 모습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제 고택에서 10년쯤 살아보니 무엇이 불편한지, 어떻게 고쳐야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편리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하신다. 고택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생활하기 불편하고 힘이 들어 어느 누구도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고택은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
김기현 선생은 하루하루 전원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문단에 등단하기까지 이르러 한옥 수필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와당에도 관심이 많아 그동안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것들을 수집해왔는데 곧 와당박물관도 개관해 관광객이나 학생들에게 우리 것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효원 여사는 서산시가 선정한 전통음식체험장 ‘다린(多隣)’을 열어 몸이 반기는 우리 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준비하고 있다. 고향에서 멋지게 인생 제2막을 열고 계신 두 분 모습이 아름답다.
<사랑채 >
<사랑채>
大烹豆腐瓜薑菜 최고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高會夫妻兒女孫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71세에 쓴 주련(柱聯)
서산과 해미를 이어주는 길목에 하천을 건너는 ‘한다리(大橋)’가 있었던 음암면 ‘한다리 마을’은 남쪽 전방으로 대교천(大橋川)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으며, 뒤편은 나지막한 야산이 펼쳐져 있는 사람이 살기 편안한 곳이다.
한다리 마을은 고려 말 성리학자인 상촌 김자수(桑村 金自粹)의 5대손 김연(金堧, 1494~ ?)과 그의 아들 김호윤(金好尹, 1534~ ?)이 터를 잡아 세거하면서 경주김씨(慶州金氏) 16대를 이어온 터전이다. 원래 이 집안은 경북 안동에서 살았고 김연은 한양에서 살았다. 김연은 무과 급제 후 서흥부사가 되어 임꺽정(林巨正)을 토벌하고 안주목사를 지낸 인물로 난을 평정하고 얻은 사패지를 근거로 약 500년 전 이곳에 입향, 한다리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경주김씨가 서산에서 대표적인 가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김연의 5대손 김적(金積, 1564~1646)부터였다. 그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김홍욱의 후손이 서산에서 한다리 김씨 가문을 부흥시켰다. 김연의 7대손 김한구(金漢?, 1723~1769)의 딸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로 책봉되어 정치에 직접 관여하고, 많은 영상과 정승을 배출함으로써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 마을로 들어서면 정순왕후가 출생해 왕비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정순왕후 생가(貞順王后 生家, 충남 기념물 제68호)와 작은댁인 서산 김기현 가옥(瑞山 金基鉉 假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99호, 충남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45)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정순왕후 생가는 조선 효종 때 승지와 예조참의 등을 지낸 김홍욱이 효종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가 노부를 모시고 있음을 알고 아버지인 김적에게 왕이 내린 집으로 효종 시절인 1649∼1659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방문은 서산 김기현 가옥이다. 김기현 가옥은 건축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중반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솟을대>
<솟을대문>
최근 들어 새로 복원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후면이 바로 보이고 그 왼쪽으로 행랑채를 배치했다. 오른쪽으로 중문간채와 초당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하고 그 사이에 협문을 두었다. 사랑채 뒤편에 ‘ㅁ’자형 안채를 두어 외부공간(남자들의 공간)과 안공간(아녀자를 위한 공간)을 협문과 담으로 엄격하게 구분해 놓았다.
사랑채는 안채 오른쪽 끝에 수직으로 연결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형 건물로 대청마루가 없는 대신 크고 작은 방 2개를 배치하고 앞뒤로는 툇마루를 두었다. 특히 사랑채 전면에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차양을 설치해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과 비를 피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들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차양지붕은 사랑채 1칸 앞에 팔모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얹었다. 앞면은 부연을 단 겹처마로, 뒷면에는 홑처마를 달아 앞쪽을 더 길게 처리했다.
사랑마당 정면에 있는 행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ㅡ’자형 건물이다. 원래 이 건물은 가운데 곳간과 부엌을 두고 좌우로 방과 큰 곳간이 있었으나 현재 왼쪽 공간은 ‘기와박물관’을 만들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안채 부엌>
안채는 완벽한 ‘ㅁ’자형 구조로 배치했다. 몸채는 가운데 안대청과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 6칸의 커다란 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에 건넌방을 배치하고 전면에는 반 칸 폭의 개방된 툇마루를 달았다. 특히 6칸 부엌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기존의 재래식 아궁이와 가마솥은 그대로 살려두고 생활하기 편리하도록 현대적인 공간으로 바꿔, 여러 사람들이 모여앉아 식사뿐만 아니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넓게 꾸며 놓았다. 건넌방 아래쪽으로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과 아랫방을 두고 옆에 있는 안대문간과 연결되어 있다. 안대문간 오른쪽에는 사랑채의 사랑부엌을 배치하였다. 부엌 앞으로는 2칸의 광을 두었고, 사랑채와 붙은 맞은편 익랑에는 헛간, 마루방, 광을 배치했다. 안채 뒷마당에는 있는 3칸 초당은 방과 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부방으로 사용한 듯하다.
<김기현>
서울에서 살다가 10년 전 이곳에 내려오신 김기현(1940년생)?이효원 선생 부부, 평생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분들이시기에 시골생활이 힘드실 법도 한데 두 분 모습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제 고택에서 10년쯤 살아보니 무엇이 불편한지, 어떻게 고쳐야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편리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하신다. 고택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는 생활하기 불편하고 힘이 들어 어느 누구도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고택은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
김기현 선생은 하루하루 전원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문단에 등단하기까지 이르러 한옥 수필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와당에도 관심이 많아 그동안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것들을 수집해왔는데 곧 와당박물관도 개관해 관광객이나 학생들에게 우리 것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효원 여사는 서산시가 선정한 전통음식체험장 ‘다린(多隣)’을 열어 몸이 반기는 우리 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준비하고 있다. 고향에서 멋지게 인생 제2막을 열고 계신 두 분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