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에 혼을 담아 그리는 예술 화각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角匠). 화각장은 쇠뿔을 삶아 얇고 투명하게 펴서 자른 뒤 뒷면에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려 빨강·파랑·노랑·검정·흰색 등 오방색과 간색으로 봉황이나 용, 모란, 십장생 등의 그림이나 문양을 넣어 색칠한 뒤 나무로 짠 함이나 장·궤·농 등의 목판 표면에 붙이고 옻칠을 해 장식하는 일을 하는 장인이다.
화각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공예분야로 한국공예의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독특한 공예 기법이다. 고려의 나전 칠기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 왕실공예로 화각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그 기원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있었던 대모복채(玳瑁伏彩) 장식 기술로, 이 기술이 통일 신라로 이입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고려 시대에 나전칠기인 경함(經函)과 염주합(念珠盒)에 복채기법으로 된 대모(玳瑁)가 나전과 같이 사용됐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화각이라는 우리의 독자적인 공예가 탄생한 것으로 보여진다.
화각은 백골(白骨)을 만드는 소목장 일, 쇠뿔을 펴서 얇게 만드는 각질장 일, 뿔편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畵工)일 등 크게 3가지 공정으로 나누며, 화각을 붙이지 않는 곳에는 칠을 입히고 기능상 필요한 곳에는 금속장식을 대는 등의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한다.
화각에 사용되는 재료인 쇠뿔은 통이 굵고 뿔이 위로 곧게 뻗은 수소의 뿔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두 살쯤 된 쇠뿔은 매우 맑고 투명해 채색이 잘 나타나 최고로 친다. 너무 어리면 흰색의 반점이 나타나고, 늙은 쇠뿔은 각질 내에 검은 미역줄기 같은 심대가 진해 투명도가 좋지 않다.
화각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웬만한 장식장 하나에 소 수 백 마리 분의 뿔이 사용된다. 그 만큼 재료가 매우 귀했다. 그 화려함 또한 대단했고,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려 옛날에는 왕실이나 특수 귀족층의 소장품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됐다. 화각 공예품은 장·궤·농·문갑과 같은 가구류와 작은 함·경대·실패·자·반짇고리·참빗·부채까지 다양하다. 조선 후기인 18세기 경 화각 공예가 성행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쇠뿔로 만든 화각공예품은 부패돼 그 이전 것의 유물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현재 남아있는 화각 공예품은 대부분 18세기 이후의 작품이다.

<화각장 이재만 선생>
현재 화각장 기능보유자는 이재만 선생이 유일하다. 이재만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故 음일천 선생에게 기술을 전수 받았다. 이재만 선생의 스승이신 음일천 선생은 조선 후기 고종 때부터 3대째 각질장(角質匠) 겸 대모공장(玳瑁工匠)으로 활동 했던 분으로 1920년대 초부터 화각장 공예 기술에 대한 조사 연구와 수련을 하며 1970년대 초까지 화각공예품 제작에 전념했던 장인이었다. 선생은 이 기술을 전수 받는 초창기에 만화를 그리고, 극장 간판을 그리는 부업도 하는 등 화각 기술의 전수활동을 게을리 한 적도 있었지만, 이후 선생의 타고난 손재주와 끊임없는 노력, 성실함으로 현재 우리나라 유일의 화각장 기능보유자의 자리에 올랐다. 선생은 꾸준한 작품 활동과 전수 교육 활동에 힘썼다. 또, 과거 전통 공예품들이 우리 실생활에 사용됐던 물품들이었던 것을 생각하며, 화각 공예품의 생활화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문화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선생은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쇠뿔에 혼을 담아 그리는 예술 화각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角匠). 화각장은 쇠뿔을 삶아 얇고 투명하게 펴서 자른 뒤 뒷면에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려 빨강·파랑·노랑·검정·흰색 등 오방색과 간색으로 봉황이나 용, 모란, 십장생 등의 그림이나 문양을 넣어 색칠한 뒤 나무로 짠 함이나 장·궤·농 등의 목판 표면에 붙이고 옻칠을 해 장식하는 일을 하는 장인이다.
화각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공예분야로 한국공예의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독특한 공예 기법이다. 고려의 나전 칠기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 왕실공예로 화각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그 기원은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있었던 대모복채(玳瑁伏彩) 장식 기술로, 이 기술이 통일 신라로 이입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고려 시대에 나전칠기인 경함(經函)과 염주합(念珠盒)에 복채기법으로 된 대모(玳瑁)가 나전과 같이 사용됐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화각이라는 우리의 독자적인 공예가 탄생한 것으로 보여진다.
화각은 백골(白骨)을 만드는 소목장 일, 쇠뿔을 펴서 얇게 만드는 각질장 일, 뿔편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畵工)일 등 크게 3가지 공정으로 나누며, 화각을 붙이지 않는 곳에는 칠을 입히고 기능상 필요한 곳에는 금속장식을 대는 등의 여러 공정을 거쳐 완성한다.
화각에 사용되는 재료인 쇠뿔은 통이 굵고 뿔이 위로 곧게 뻗은 수소의 뿔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두 살쯤 된 쇠뿔은 매우 맑고 투명해 채색이 잘 나타나 최고로 친다. 너무 어리면 흰색의 반점이 나타나고, 늙은 쇠뿔은 각질 내에 검은 미역줄기 같은 심대가 진해 투명도가 좋지 않다.
화각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웬만한 장식장 하나에 소 수 백 마리 분의 뿔이 사용된다. 그 만큼 재료가 매우 귀했다. 그 화려함 또한 대단했고, 만드는 공정도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려 옛날에는 왕실이나 특수 귀족층의 소장품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됐다. 화각 공예품은 장·궤·농·문갑과 같은 가구류와 작은 함·경대·실패·자·반짇고리·참빗·부채까지 다양하다. 조선 후기인 18세기 경 화각 공예가 성행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쇠뿔로 만든 화각공예품은 부패돼 그 이전 것의 유물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현재 남아있는 화각 공예품은 대부분 18세기 이후의 작품이다.
<화각장 이재만 선생>
현재 화각장 기능보유자는 이재만 선생이 유일하다. 이재만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故 음일천 선생에게 기술을 전수 받았다. 이재만 선생의 스승이신 음일천 선생은 조선 후기 고종 때부터 3대째 각질장(角質匠) 겸 대모공장(玳瑁工匠)으로 활동 했던 분으로 1920년대 초부터 화각장 공예 기술에 대한 조사 연구와 수련을 하며 1970년대 초까지 화각공예품 제작에 전념했던 장인이었다. 선생은 이 기술을 전수 받는 초창기에 만화를 그리고, 극장 간판을 그리는 부업도 하는 등 화각 기술의 전수활동을 게을리 한 적도 있었지만, 이후 선생의 타고난 손재주와 끊임없는 노력, 성실함으로 현재 우리나라 유일의 화각장 기능보유자의 자리에 올랐다. 선생은 꾸준한 작품 활동과 전수 교육 활동에 힘썼다. 또, 과거 전통 공예품들이 우리 실생활에 사용됐던 물품들이었던 것을 생각하며, 화각 공예품의 생활화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문화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선생은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