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안동 군자마을 (安東 君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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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마>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 그래도 간간히 붉은 단풍이 남아있어 눈이 즐겁다. 전통이 살아있고 양반의 가풍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있는 안동으로 간다. 그곳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면 조금 멀리 떠나 봐도 좋을 듯싶다.

 

 안동 군자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 농수 김효로(金孝虜, 1455~1534)가 세거한 지 600여년 만에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외내’에서 종택과 누정 등 20여 채의 고택을 지금의 오천 군자마을로 이건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는 이곳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오천 군자마을이라는 이름은 당시 안동부사였던 한강 정구가 “오천 한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이 선성지(宣城誌)에 기록된 후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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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조당 대청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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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조당>



 군자마을의 고택들은 조붓하게 언덕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올라와 마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고택마다 고운 나뭇결 그대로의 멋이 흐르고 조상들의 숨결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먼저 조금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후조당 대종택으로 간다. 대문을 들어서면 건물 앞기둥을 석주 위에 세워 당당하고 힘 있게 보이는 사랑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ㅡ’자형 건물로 대청을 가운데로 두고 좌우로 큰사랑방과 작은사랑방이 있으며, 건물 앞쪽으로 툇마루를 두고 계자난간을 둘러놓았다.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後彫堂, 중요민속문화재 제227호)은 후조당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지은 제청으로 그의 호를 당호로 붙였다. 퇴계의 제자인 김부필은 약관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 정자를 지어 시문을 즐기고 학문에 전념하며 지냈다. 후조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동쪽 모서리에 정면 1칸, 측면 2칸을 달아낸 ‘ㄱ’자형 건물로, 6칸의 넓은 대청, 그 오른쪽으로 온돌방이 있고, 앞으로 돌출된 마루와 온돌방을 배치했다. 대청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으며, 사방에 창호를 달아 사계절 내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분합들문을 열어젖히면 나지막한 산들이 마을을 향해 엎드려 있는 듯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소문대로 명당은 명당인가보다. 후조당에 오르면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한다. 이곳 천장에서 엄청난 보물이 발견되었다. 이건을 위해 건물을 해체할 당시 대청의 합각 하부 천장에서 안동 낙향조인 18대 김무에서 30대 김숙에 걸쳐 모아 둔 교지, 호구단자, 토지문서, 분재기, 혼서 등 고문서 2천점과 고서 2천5백권이 쏟아졌다. 이 가운데 고문서 7종 429점은 보물 제1018호, 구서 13종 61점은 보물 제101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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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청정>


<탁청정공파 종택> 
 

 후조당 종택 바로 옆에 있는 읍청정(?淸亭) 정자를 지나 안동 광산김씨 탁청정공파 종택( 安東 光山金氏 濯淸亭公派 宗宅, 중요민속문화재 제272호)으로 간다. 이 종택은 김효로의 둘째 아들인 김유(金綏, 1491~1555)가 1541년 건립한 건물로 안채와 문간채(사랑채), 좌?우익사가 연결된 ‘ㅁ’자형 구조로 배치를 했다. 문간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ㅡ’자형 건물로 가운데 대문을 두고 따로 사랑채를 두지 않고 정면 왼쪽을 사랑채로 사용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좌?우익사 정면 2칸, 측면 1칸과 연결되어 있다. 안채를 조금 높게 지었고 안마루의 양식은 양쪽이 2층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사랑채를 가장 낮게 지었다. 탁청정(濯淸亭, 중요민속문화재 제226호)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오른쪽 4칸은 정면과 측면이 탁 트인 대청이 있고 왼쪽에 2칸 규모의 온돌방이 있다. 매우 큰 주춧돌위에 세워진 정자의 누마루에 오르면 대들보와 충량, 선자연의 짜임 등 치목수법이 섬세하면서도 중후한 멋을 느낄 수 있어 영남지방에 있는 정자 중 가장 웅장하고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건축 당시에는 화루(華樓)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단청까지 있었다고 한다.

 

 군자마을에는 후조당, 읍청정, 탁청정, 설월당, 낙운정, 침략정 등 수백년 세월을 함께 했던 고택과 함께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광산김씨 예안파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을 보관해 놓은 숭원각(崇遠閣)이 그것이다. 2007년 문을 연 숭원각에는 광산김씨 문중에서 보관해 오던 분재기, 노비문서, 혼서 등 고문서와 전적유물 15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보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민속 또는 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 가문의 600여년을 관통하며 살아온 흔적이며 소중한 그들의 유산인 전적류와 보물들을 고스란히 지켜온 선조들의 노고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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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식>


<김방식 안동 군자마을 관장>

  안동 군자마을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마을이 자리 잡기까지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고 김준식 선생. 안동 문화원장으로, (사)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명예회장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는 올곧은 선비로의 삶을 사셨던 선생의 손길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김준식 선생은 2011년 8월에 돌아가시고 선생의 막내동생인 김방식(1955년생) 군자마을 관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김방식 관장은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수몰 전 외내에서 보내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올라가 지난 2008년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40년을 객지에서 지냈다. 17년 차이, 부모님보다 무섭게 느껴지던 형님께서 부르셨다. 그 당시 내려온 고향집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어느 한 곳 제대로 작동되는 것 없이 그저 낯설기만 했고, 가끔은 ‘이 어려운 길을 형님은 왜 부르셨을까’하는 원망 아닌 원망도 했단다. 형님과 함께 군자마을 고택들을 쓸고 닦으며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하나하나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조상들이 남긴 유물들을 정리해 이를 보존할 수 있는 숭원각을 건립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건립했다. 그래도 지난 4년 어렵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형님이 옆에 계셔서 힘든 줄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신다. 안동 군자마을에는 연간 10만 명 정도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단순하게 관광객이 와서 구경하고 가는 그런 관광지가 아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휴식과 체험을 병행하는 품격 있는 고택체험의 장이 되길 희망하고 계셨다.

 

 김방식 관장과 함께 군자마을 이곳저곳 유유자적 걸어본 고택에서 보낸 늦가을 한낮, 그대로 전해지는 풍경이 좋았다. 김방식 관장은 말한다. 사람이 아름답고, 집과 사람이 조화로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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