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제주 관덕정(觀德亭)과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



제주 시내 중심부에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이자 제주 고유의 역사적 숨결을 아우르는 곳, 제주 관덕정(濟州 觀德亭)과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가 자리 잡고 있다.


<관덕정 전경>


 제주 관덕정(濟州 觀德亭, 보물 제322호, 제주시 관덕로 19)은 조선 세종 30년(1448) 안무사 신숙청(辛淑晴)이 병사들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관덕(觀德)’이라는 명칭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예기(禮記)》에 나오는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를 인용한 것으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관덕정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 안무사 신숙청이 세웠고, 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이 후에는 병사의 훈련뿐만 아니라 공사를 의논하거나 잔치를 베푸는 곳, 또는 죄인을 다스리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관덕정은 4ㆍ3항쟁 당시 무장유격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의 시신이 며칠이나 내걸려 있었던 비운의 현장이기도 하며, 현재 건물은 1969년 보수한 것이다.


<관덕정 내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인 관덕정은 2단의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정자로이다. 바닥은 앞쪽 한칸은 돌로 바닥을 깔고,뒤쪽은 마루를 깔았으며 사방이 탁 트이게 뚫려 있다. 건물 안에는 앞뒤 일렬로 네 개씩 높은 기둥을 세웠으며, 내부의 포벽(包壁)에는 적벽대전도, 공명탄금도 등 7폭의 벽화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원래 관덕정은 지붕 처마가 긴 것이 특징이었지만 1924년 일본인들이 보수하면서 처마 부분을 많이 잘라내었다고 한다.


<관덕정 편액>


 ‘觀德亭(관덕정)’ 편액은 원래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였으나 화재로 손실되어 현재의 글씨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가 쓴 것이 걸려있다. ‘耽羅形勝(탐라형승)’이라고 쓴 편액은 정조 2년(1778)에 부임해온 제주목사 김영수(金永綏)가 썼고, ‘湖南第一亭(호남제일정)’이라고 쓴 편액은 고종 19년(1882) 방어사 박선양(朴善楊)이 중수하면서 쓴 것이다.

 

 관덕정 오른쪽 앞에는 기를 달던 기간지주(旗竿支柱)가 서 있다.

 

 제주목 관아(濟州牧官衙, 사적 제380호)는 조선 시대 제주지방의 통치의 중심지로, 이미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던 곳이다. 관아시설은 1434년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그 다음해인 1435년에 다시 지었으며 조선 시대 내내 중.개축을 하였다. 하지만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세종 17년(1435) 고득종(高得宗)이 쓴 《홍화각기(弘化閣記)》에 따르면 제주목의 관아 시설들은 총 58동 206칸 규모였다고 한다.


<왼쪽부터 연희각, 망경루, 귤림당>


 제주시에서는 제주목 관아를 복원하기 위해 1991∼1998년까지 4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탐라 시대부터 조선·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기의 문화층과 함께 문헌상에 나타나 있던 건물터와 유구를 확인하였다. 1993년에 제주목 관아지 일대는 국가 사적 제380호로 지정되고, 2002년에 복원을 마치게 되었다. 

 

 제주목 관아는 외대문, 회랑, 연희각(延曦閣), 홍화각(弘化閣), 우련당(友蓮堂), 영주협당(瀛洲協堂), 귤림당(橘林堂), 망경루(望京樓)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부터 홍화각, 중문, 영주협당>


 관아의 관문, 외대문인 ‘진해루(鎭海樓)’는 1435년에 건립되었으며, 1699년 제주목사 남지훈(南至薰)이 개건하였다고 한다. 2층 누각은 종루(鐘樓)로도 활용되었다.
 

<연희각>


 연희각은 목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상아(上衙)의 동헌(東軒),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 불리웠다. 언제 건립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884년 제주 목사 홍규(洪圭)에 의해 중수되었다가 1924년 일제가 강제로 헐렸다.

 홍화각은 예전에 절제사가 사무를 보던 곳으로, 1435년 안무사 최해산(崔海山)이 창건하였으며, 몇 차례 중수를 거쳐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다.


<우련당>


 우련당은 연회를 베풀고 공물을 봉진하던 곳으로, 1526년 제주 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연못을 만들고 이 정자를 세웠다. 

 그밖에 영주협당은 군관들이 근무하던 관청이고, 귤림당은 바둑을 두거나 시를 지으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망경루는 임금님의 은덕을 기리는 공간이자 제주 앞바다로 침범하는 왜구를 감시하는 망루 역할을 하던 곳이다. 회랑은 원래 칸마다 벽체를 두른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제주목의 생활상과 역사를 이해 할 수 있는 제주목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회랑(현재 제주목역사관)>


 제주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는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길을 가르쳐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등 제주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문화유산이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제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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