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안읍>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金錢山)을 뒤로 주위에는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 안고 있어 평온함이 느껴지는 벌판에 수백 년 세월이 흘렸음에도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바로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사적 제302호)이 그곳이다.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낙안’은 한양을 모델로 만든 조선 시대 지방계획도시다. 하지만 이곳은 예로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아 고려 후기에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397년(태조 6) 김빈길(金斌吉, 미상~1405)이 백성을 동원해 토성을 쌓은 것이 낙안읍성의 전신이 되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로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순천>
<낙안성 우물>
낙안읍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 가지, 동문, 서문, 남문이 있다. 청?흑?백색의 깃발이 나부끼는 동문 앞에 선다. 동문 입구에는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꿋꿋하게 그곳을 지키며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개(犬)조각상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채 서 있다. 낙안읍성은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동헌(東軒), 객사(客舍), 향교 등 관아건물이 있고, 남쪽은 초가집, 대장간, 장터 등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초가집을 에두른 나지막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을 아낙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우물 ‘똘샘’도 만나게 되고, 선조들의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정겨운 툇마루와 부엌, 토방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낙안읍성에는 성곽을 비롯해 중요민속문화재 가옥 9동 등 13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300여년을 훌쩍 넘은 노거수들이 옛 모습을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290여 동의 초가집에 120세대 288명의 주민이 직접 거주하며 농사도 짓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전통문화체험을 하고 있다.
낙안읍성의 가장 중앙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낙안객사(樂安客舍, 전남 유형문화재 제170호,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401)는 새로 고을 수령이 부임하거나 초하루와 보름, 고을에 좋은 일이나 굿을 일이 있을 때 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 예를 올리던 곳으로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객사는 중앙마루에 전폐를 두고 좌우에 각각 한 단 낮은 지붕의 익사(翼舍)를 배치해 놓았다.

<낙안성 박의준 가옥 전경>
낙안성 박의준 가옥(樂安城 朴義俊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2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3-1)은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향리가 살던 집으로 성 안의 다른 집들보다 대지도 넓고 가장 멋을 부린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채가, 맞은편에 아래채가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헛간채는 대문 옆에 붙어있다. 비교적 남도지방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4칸의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 안방, 안마루, 건넌방으로 배열되어 있고, 방과 마루 앞으로 작은 툇마루가 있어 이동이 편리하다.

<낙안성>
<낙안성 김대자 가옥 부엌>
낙안성 김대자 가옥(樂安城 金大子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5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90)은 성의 동서를 잇는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을 들어서면 반듯하고 넓은 안마당 뒤로 ‘ㅡ’자형 안채가 있고, 대문 바로 옆에 헛간채가 붙어있다. 중앙에 마루를 두고 왼쪽에 안방과 부엌, 오른쪽에 건넌방이 배열되어 있고, 작은방 앞에는 ‘ㄱ’자형으로 토담을 쌓아 편리하게 반내부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헛간을 두었다. 특히 이 가옥의 부엌에는 가택신앙으로 조왕신을 모시던 자리와 광솔불을 켜던 선반이 남아 있어 우리 선조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다.
낙안성 곽형두 가옥(樂安城 郭炯斗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00호, 순천시 낙안면 읍성안길 95)은 향리가 살던 집으로 성안에서 가장 단아하고 건실하며 정원도 비교적 잘 꾸며 놓았다. 이 가옥의 앞에는 남쪽 성벽이 연접해 있어 성벽을 한 쪽 담으로 삼고 나머지 세 면을 돌담으로 돌아가며 쌓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 옆으로 안채를, 대문과 마주한 곳에 헛간채를 배치했다. 다른 집에 비해 다소 높은 막돌기단 위에 지은 4칸의 ‘ㅡ’자형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 안방, 마루방, 건넌방을 배열했다.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건넌방 오른쪽까지 툇마루를 놓았고, 안방과 마루방 뒤쪽으로는 퇴칸을 마루를 깔지 않은 흙바닥으로 두고 보관장소로 활용했다. 헛간채는 돌담과 연결된 담집이다.
이밖에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은 낙안성 양규철 가옥(樂安城 梁圭喆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3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21), 낙안성 이한호 가옥( 樂安城 李漢皓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4호, 순천시 낙안면 읍성안길 145), 낙안성 주두열 가옥(樂安城 朱斗烈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6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90), 낙안성 최창우 가옥( 樂安城 崔昌羽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7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13), 낙안성 최선준 가옥(樂安城 崔善準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8호,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343-1), 낙안성 김소아 가옥( 樂安城 金小兒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9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104) 등이 있다.
구불구불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다 돌아봤다면 성곽길도 한 번 걸어봐야 한다. 서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보인다. 마을길을 걷느라 지친 방문객에게 땀을 한꺼번에 싹 날려주는 시원한 바람도 선사한다.

<낙안성>
<남문 앞 도예 체험장>
현재 세월이 비껴간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낙안읍성에서는 선조의 생활문화를 보고 느끼고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짚풀공예, 길쌈시연, 천연염색, 한지공예, 농악놀이교실, 농기구체험, 목공예체험, 옥사체험, 도자기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체험 공간이 있다. 만약 시간이 허락된다면 숙박체험도 할 수 있다. 400년 전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 봐도 좋을 듯싶다.
<낙안읍>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金錢山)을 뒤로 주위에는 야트막한 산들이 감싸 안고 있어 평온함이 느껴지는 벌판에 수백 년 세월이 흘렸음에도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바로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사적 제302호)이 그곳이다.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낙안’은 한양을 모델로 만든 조선 시대 지방계획도시다. 하지만 이곳은 예로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아 고려 후기에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397년(태조 6) 김빈길(金斌吉, 미상~1405)이 백성을 동원해 토성을 쌓은 것이 낙안읍성의 전신이 되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로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순천>
<낙안성 우물>
낙안읍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 가지, 동문, 서문, 남문이 있다. 청?흑?백색의 깃발이 나부끼는 동문 앞에 선다. 동문 입구에는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꿋꿋하게 그곳을 지키며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개(犬)조각상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채 서 있다. 낙안읍성은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동헌(東軒), 객사(客舍), 향교 등 관아건물이 있고, 남쪽은 초가집, 대장간, 장터 등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초가집을 에두른 나지막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을 아낙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우물 ‘똘샘’도 만나게 되고, 선조들의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정겨운 툇마루와 부엌, 토방 등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낙안읍성에는 성곽을 비롯해 중요민속문화재 가옥 9동 등 13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300여년을 훌쩍 넘은 노거수들이 옛 모습을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290여 동의 초가집에 120세대 288명의 주민이 직접 거주하며 농사도 짓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전통문화체험을 하고 있다.
낙안읍성의 가장 중앙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낙안객사(樂安客舍, 전남 유형문화재 제170호,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401)는 새로 고을 수령이 부임하거나 초하루와 보름, 고을에 좋은 일이나 굿을 일이 있을 때 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 예를 올리던 곳으로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객사는 중앙마루에 전폐를 두고 좌우에 각각 한 단 낮은 지붕의 익사(翼舍)를 배치해 놓았다.
<낙안성 박의준 가옥 전경>
낙안성 박의준 가옥(樂安城 朴義俊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2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3-1)은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향리가 살던 집으로 성 안의 다른 집들보다 대지도 넓고 가장 멋을 부린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채가, 맞은편에 아래채가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헛간채는 대문 옆에 붙어있다. 비교적 남도지방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4칸의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 안방, 안마루, 건넌방으로 배열되어 있고, 방과 마루 앞으로 작은 툇마루가 있어 이동이 편리하다.
<낙안성>
<낙안성 김대자 가옥 부엌>
낙안성 김대자 가옥(樂安城 金大子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5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90)은 성의 동서를 잇는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을 들어서면 반듯하고 넓은 안마당 뒤로 ‘ㅡ’자형 안채가 있고, 대문 바로 옆에 헛간채가 붙어있다. 중앙에 마루를 두고 왼쪽에 안방과 부엌, 오른쪽에 건넌방이 배열되어 있고, 작은방 앞에는 ‘ㄱ’자형으로 토담을 쌓아 편리하게 반내부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헛간을 두었다. 특히 이 가옥의 부엌에는 가택신앙으로 조왕신을 모시던 자리와 광솔불을 켜던 선반이 남아 있어 우리 선조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다.
낙안성 곽형두 가옥(樂安城 郭炯斗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00호, 순천시 낙안면 읍성안길 95)은 향리가 살던 집으로 성안에서 가장 단아하고 건실하며 정원도 비교적 잘 꾸며 놓았다. 이 가옥의 앞에는 남쪽 성벽이 연접해 있어 성벽을 한 쪽 담으로 삼고 나머지 세 면을 돌담으로 돌아가며 쌓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 옆으로 안채를, 대문과 마주한 곳에 헛간채를 배치했다. 다른 집에 비해 다소 높은 막돌기단 위에 지은 4칸의 ‘ㅡ’자형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 안방, 마루방, 건넌방을 배열했다.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건넌방 오른쪽까지 툇마루를 놓았고, 안방과 마루방 뒤쪽으로는 퇴칸을 마루를 깔지 않은 흙바닥으로 두고 보관장소로 활용했다. 헛간채는 돌담과 연결된 담집이다.
이밖에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은 낙안성 양규철 가옥(樂安城 梁圭喆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3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21), 낙안성 이한호 가옥( 樂安城 李漢皓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4호, 순천시 낙안면 읍성안길 145), 낙안성 주두열 가옥(樂安城 朱斗烈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6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90), 낙안성 최창우 가옥( 樂安城 崔昌羽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7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13), 낙안성 최선준 가옥(樂安城 崔善準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8호,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343-1), 낙안성 김소아 가옥( 樂安城 金小兒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99호,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104) 등이 있다.
구불구불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다 돌아봤다면 성곽길도 한 번 걸어봐야 한다. 서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보인다. 마을길을 걷느라 지친 방문객에게 땀을 한꺼번에 싹 날려주는 시원한 바람도 선사한다.
<낙안성>
<남문 앞 도예 체험장>
현재 세월이 비껴간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낙안읍성에서는 선조의 생활문화를 보고 느끼고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짚풀공예, 길쌈시연, 천연염색, 한지공예, 농악놀이교실, 농기구체험, 목공예체험, 옥사체험, 도자기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체험 공간이 있다. 만약 시간이 허락된다면 숙박체험도 할 수 있다. 400년 전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 봐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