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빌딩숲 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 시대 ‘청학동’이라 불리며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손꼽히는 곳이다. 1993년부터 이곳의 옛 정취를 되살리고자 전통정원을 조성하고, 서울 사대부가와 일반평민의 집 등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을 개관하였다.

<남산골 한옥마을>
다섯 채의 전통한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 내부에는 집의 규모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에 따라 가구를 비롯해 생활용품을 두어 선조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을 체험하면서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 천우각과 청학지>

<한국전통공예관>
옛 모습을 복원해 놓은 천우각과 청학지 주변에는 전통정원을 꾸미고, 한국전통공예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품을 전시해 놓았다. 그밖에도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 등이 주변에 있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른쪽에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三角洞 都片手 李承業 家屋,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0호)을 만나게 된다. 이 집은 조선 말기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집으로,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이전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나란히 서 있다. 정면 4칸, 측면 5칸 규모의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을 두고 그 앞쪽으로 부엌을 배치하였다. 대청 오른쪽으로는 앞뒤를 갈라 건넌방을 두었으며 정면과 측면은 난간을 두른 쪽마루를 설치해 놓았다. 특히 부엌 앞쪽으로 낸 창살 문양이 아름답고, 지붕선이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모양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을 각각 배치하고, 앞쪽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三淸洞 五衛將 金春榮 家屋,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8호)은 조선 후기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에 지은 집으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서울지방의 일반 주택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왼쪽에 1칸 규모의 문간방이 있고 왼쪽으로 사랑채가 대문채와 연결되어 돌출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랑채는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방을 각각 배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안채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 왼쪽에 안방을 두었다. 안방 앞쪽으로 연결된 날개채에는 부엌·마루·광을 각각 배치하였다.

<관훈동 민 씨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寬勳洞 閔氏 家屋,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8호)은 1700년대 지은 민영휘(閔泳徽,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를 이건한 집으로, 안채를 옮겨 지으면서 철거되었던 건넌방 쪽을 되살리고, 사랑채와 별당채는 새로 지었다. 서울지방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갖춘 이 집은 원래 관훈동 일대 너른 땅에다 집을 여러 채 짓고 일가들이 함께 모여 살았다. 그곳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별당채와 대문간채, 행랑채 같은 집채가 있었으나 나중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려졌다.

<관훈동 민 씨 가옥 내부>

<관훈동 민 씨 가옥 부엌>
중문간채를 통해 안채영역으로 들어서면 ‘ㄱ’자형 큰 규모의 안채가 자리 잡고 있다. 가운데 6칸 규모의 안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을 두고, 왼쪽으로 안방과 작은대청과 방을 각각 이어서 배치하였다. 대청 앞쪽과 뒤쪽에는 툇마루를 설치하고, 중문채와 연결된 날개채에 대가임을 느낄 수 있는 큰 부엌을 두었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과 사당>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사당 내부>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4호)은 조선 제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지은 집으로,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건하였다. 이 집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원)'자형 평면구조로 제일 위에 사당을 배치하고 본채를 두었으며 본채 앞에는 대문을 두고 그 옆에 행랑채를 두었다.
원래 제실로 사용되던 이 집은 본채는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누마루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방들은 대청을 가운데 두고 서로 대칭되게 앉아 있다. 외부에서는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안방과 사랑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옥인동 윤 씨 가옥>
옥인동 윤 씨 가옥은 1910년대에 지었다고 알려진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은 집으로, 원래 그 집을 그대로 옮겨 지으려 시도했으나 부재가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 신축하였다. 최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갖춘 이 집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채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

서울의 빌딩숲 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 시대 ‘청학동’이라 불리며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손꼽히는 곳이다. 1993년부터 이곳의 옛 정취를 되살리고자 전통정원을 조성하고, 서울 사대부가와 일반평민의 집 등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을 개관하였다.
<남산골 한옥마을>
다섯 채의 전통한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 씨 가옥’ 내부에는 집의 규모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에 따라 가구를 비롯해 생활용품을 두어 선조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한옥실내 공간을 체험을 체험하면서 한복 입기, 한지 접기, 한글 쓰기, 전통차 마시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 천우각과 청학지>
<한국전통공예관>
옛 모습을 복원해 놓은 천우각과 청학지 주변에는 전통정원을 꾸미고, 한국전통공예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품을 전시해 놓았다. 그밖에도 서울남산국악당, 새천년타임캡슐 광장 등이 주변에 있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른쪽에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三角洞 都片手 李承業 家屋,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0호)을 만나게 된다. 이 집은 조선 말기 경복궁이 중건될 때 도편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집으로,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이전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나란히 서 있다. 정면 4칸, 측면 5칸 규모의 안채는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을 두고 그 앞쪽으로 부엌을 배치하였다. 대청 오른쪽으로는 앞뒤를 갈라 건넌방을 두었으며 정면과 측면은 난간을 두른 쪽마루를 설치해 놓았다. 특히 부엌 앞쪽으로 낸 창살 문양이 아름답고, 지붕선이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모양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을 각각 배치하고, 앞쪽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三淸洞 五衛將 金春榮 家屋,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8호)은 조선 후기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에 지은 집으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서울지방의 일반 주택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왼쪽에 1칸 규모의 문간방이 있고 왼쪽으로 사랑채가 대문채와 연결되어 돌출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랑채는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방을 각각 배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안채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 왼쪽에 안방을 두었다. 안방 앞쪽으로 연결된 날개채에는 부엌·마루·광을 각각 배치하였다.
<관훈동 민 씨 가옥>
관훈동 민 씨 가옥(寬勳洞 閔氏 家屋,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8호)은 1700년대 지은 민영휘(閔泳徽,1852~1935)의 저택 가운데 일부를 이건한 집으로, 안채를 옮겨 지으면서 철거되었던 건넌방 쪽을 되살리고, 사랑채와 별당채는 새로 지었다. 서울지방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갖춘 이 집은 원래 관훈동 일대 너른 땅에다 집을 여러 채 짓고 일가들이 함께 모여 살았다. 그곳에는 안채와 사랑채 외에도 별당채와 대문간채, 행랑채 같은 집채가 있었으나 나중에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려졌다.
<관훈동 민 씨 가옥 내부>
<관훈동 민 씨 가옥 부엌>
중문간채를 통해 안채영역으로 들어서면 ‘ㄱ’자형 큰 규모의 안채가 자리 잡고 있다. 가운데 6칸 규모의 안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을 두고, 왼쪽으로 안방과 작은대청과 방을 각각 이어서 배치하였다. 대청 앞쪽과 뒤쪽에는 툇마루를 설치하고, 중문채와 연결된 날개채에 대가임을 느낄 수 있는 큰 부엌을 두었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과 사당>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사당 내부>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4호)은 조선 제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지은 집으로,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건하였다. 이 집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원)'자형 평면구조로 제일 위에 사당을 배치하고 본채를 두었으며 본채 앞에는 대문을 두고 그 옆에 행랑채를 두었다.
원래 제실로 사용되던 이 집은 본채는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누마루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방들은 대청을 가운데 두고 서로 대칭되게 앉아 있다. 외부에서는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안방과 사랑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옥인동 윤 씨 가옥>
옥인동 윤 씨 가옥은 1910년대에 지었다고 알려진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을 그대로 본떠서 새로 지은 집으로, 원래 그 집을 그대로 옮겨 지으려 시도했으나 부재가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 신축하였다. 최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갖춘 이 집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채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