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재(水陸齋)는 온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孤魂)의 천도를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례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성행하였다.

<방생의식 ((사)두타산삼화사국행수륙대재보존회) 사진제공=문화재청>
수륙재는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 재위 502∼549) 때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971년(광종 22)에 수원 갈양사(葛陽寺)에서 열린 수륙도장이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정책을 시행하였으나 태조 이성계는 조선건국 과정에서 자신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고려 공양왕 부부와 왕실 왕족들을 위해서 4년(1395)에 관음굴, 견암사, 삼화사에서 매년 봄, 가을에 수륙재를 설행하도록 하였다. 특히 진관사는 국행수륙재를 행하는 본사로 정하고 성대하게 제의를 행하였다. 조선 중·후기에는 억불(抑佛) 정책으로 주로 물가와 바닷가에서 민속신앙과 결합해 용왕재(龍王齋)·수륙제(水陸祭)·천도재(薦度齋)란 이름으로 행해져왔다.
현재 전승하고 있는 수륙재의 원본은 크게 4종으로 《중례문(中禮文)》,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자기산보집(仔夔刪補集)》 등이다. 과거의 수륙재는 여러 날에 걸쳐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18세기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엔 하루 밤낮, 삼일, 칠일에 걸쳐 시행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전하고 있어 국가적으로 거행한 대규모 행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산작법-향화게 착복무4 ((사)진관사국행수륙대보존회) 사진제공=문화재청>
수륙재의 절차는 크게 10단계로 진행한다.
1. 재를 여는 취지를 밝힌다.
2. 영혼이 불보살로부터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
3. 명부사자를 맞이하기 위한 분향의식을 한다.
4. 문밖에서 명부사자를 초청하여 공양하고 축원을 봉송한다.
5. 재의도량이 청정도량이 되게 오방신에게 공양한다.
6. 명부사자를 대접해 보내고 불법승 삼보에게 청하여 공양한다.
7. 불교의 정법신앙인 삼보를 불단에 모신다.
8. 몸을 청결히 하고 다시 법의 뜻을 지닌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9. 고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이 펼쳐진다.
10. 참회와 사흥서원이 펼쳐져 고혼은 불제자가 되어 비로소 구제를 받게 된다.
수륙재를 진행할 때 불교음악으로 창을 하고, 반주악기로서 태징·목탁·요령·북 등이 따르게 되고, 의식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불교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의식무용이 곁들인다.

<아랫녘 수륙재 사진제공=문화재청>
현재 수륙재는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동해 삼화사 수륙재(三和寺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 서울 진관사 수륙재(津寬寺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 아랫녘 수륙재(아랫녘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 등이 있다.
강원도 동해 삼화사에서 거행되는 ‘삼화사 수륙재’는 조선전기 국행수륙재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고혼 천도의 수륙재 전통을 전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의식과 범패, 장엄 등을 아울러 전승하고 있다. 서울 진관사는 조선 시대에 왕실 주도의 대규모 수륙재를 주로 담당하였던 중심 사찰로, 이곳에서 행해지는 ‘진관사 수륙재‘는 의식, 설단, 장엄 등 수륙재의 여러 분야에 대해 전승하고 있다. 아랫녘 수륙재 (아랫녘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는 경남 일대에서 전승되던 범패의 맥을 이어 의례와 음악적 측면에서 경남 지방의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아랫녘 수륙재보존회
수륙재(水陸齋)는 온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孤魂)의 천도를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례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성행하였다.
<방생의식 ((사)두타산삼화사국행수륙대재보존회) 사진제공=문화재청>
수륙재는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 재위 502∼549) 때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971년(광종 22)에 수원 갈양사(葛陽寺)에서 열린 수륙도장이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정책을 시행하였으나 태조 이성계는 조선건국 과정에서 자신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고려 공양왕 부부와 왕실 왕족들을 위해서 4년(1395)에 관음굴, 견암사, 삼화사에서 매년 봄, 가을에 수륙재를 설행하도록 하였다. 특히 진관사는 국행수륙재를 행하는 본사로 정하고 성대하게 제의를 행하였다. 조선 중·후기에는 억불(抑佛) 정책으로 주로 물가와 바닷가에서 민속신앙과 결합해 용왕재(龍王齋)·수륙제(水陸祭)·천도재(薦度齋)란 이름으로 행해져왔다.
현재 전승하고 있는 수륙재의 원본은 크게 4종으로 《중례문(中禮文)》,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자기산보집(仔夔刪補集)》 등이다. 과거의 수륙재는 여러 날에 걸쳐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18세기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엔 하루 밤낮, 삼일, 칠일에 걸쳐 시행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전하고 있어 국가적으로 거행한 대규모 행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산작법-향화게 착복무4 ((사)진관사국행수륙대보존회) 사진제공=문화재청>
수륙재의 절차는 크게 10단계로 진행한다.
1. 재를 여는 취지를 밝힌다.
2. 영혼이 불보살로부터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
3. 명부사자를 맞이하기 위한 분향의식을 한다.
4. 문밖에서 명부사자를 초청하여 공양하고 축원을 봉송한다.
5. 재의도량이 청정도량이 되게 오방신에게 공양한다.
6. 명부사자를 대접해 보내고 불법승 삼보에게 청하여 공양한다.
7. 불교의 정법신앙인 삼보를 불단에 모신다.
8. 몸을 청결히 하고 다시 법의 뜻을 지닌 새옷으로 갈아입는다.
9. 고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이 펼쳐진다.
10. 참회와 사흥서원이 펼쳐져 고혼은 불제자가 되어 비로소 구제를 받게 된다.
수륙재를 진행할 때 불교음악으로 창을 하고, 반주악기로서 태징·목탁·요령·북 등이 따르게 되고, 의식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불교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의식무용이 곁들인다.
<아랫녘 수륙재 사진제공=문화재청>
현재 수륙재는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동해 삼화사 수륙재(三和寺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 서울 진관사 수륙재(津寬寺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 아랫녘 수륙재(아랫녘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 등이 있다.
강원도 동해 삼화사에서 거행되는 ‘삼화사 수륙재’는 조선전기 국행수륙재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고혼 천도의 수륙재 전통을 전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의식과 범패, 장엄 등을 아울러 전승하고 있다. 서울 진관사는 조선 시대에 왕실 주도의 대규모 수륙재를 주로 담당하였던 중심 사찰로, 이곳에서 행해지는 ‘진관사 수륙재‘는 의식, 설단, 장엄 등 수륙재의 여러 분야에 대해 전승하고 있다. 아랫녘 수륙재 (아랫녘 水陸齋,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는 경남 일대에서 전승되던 범패의 맥을 이어 의례와 음악적 측면에서 경남 지방의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아랫녘 수륙재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