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문화재]조선왕릉 10. 서울 강릉 (康陵)



서울 태릉과 강릉(泰陵과 康陵, 사적 제201호,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은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 씨(文定王后 尹 氏)의 무덤인 태릉과 제13대 왕인 명종(明宗, 1534~1567)과 인순왕후 심 씨(仁順王后 沈 氏, 1532~1575)의 무덤인 강릉이다.
 

 강릉(康陵)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능제(陵制)는 국조오례의식에 따라 왕릉과 왕비릉 모두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12면의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향·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서울 강릉 사진제공=문화재청>


 명종은 중종과 문정왕후의 아들로 태어나 1539년 경원대군에 책봉되었으며,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문예를 좋아하였다. 1545년 이복형인 인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르게 된다. 12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른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윤임, 유관 등 인종을 지지하던 대윤과 문정왕후의 외척세력인 윤형원을 비롯한 소윤이 대립하여 을사사화가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임꺽정이 난을 일으키고, 남쪽에서는 왜구의 침입이 계속 되는 등 사회가 불안하고 민심이 흉흉하였다.

 명종은 1553년 친정을 선포한 후 외척을 견제하며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려고 노력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567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서울 강릉 참도와 박석 사진제공=문화재청>


 인순왕후는 청릉부원군 청송심씨 심강과 완산부부인 이 씨의 딸로, 1563년(중종 27) 경원대군과 가례를 올리고 명종으로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순왕후와 명종 사이에 순회세자를 낳았지만 어린 나이에 죽게 되어 후사가 없고, 명종이 1567년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이복형인 덕흥군의 아들 하성군이 16세에 왕위를 잇게 된다. 하성군이 제14대  선조 임금의 등극하자 인순왕후가 잠시 수렴청정을 하고 물러나 1571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 태릉 사진제공=문화재청>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하나인 서울 태릉과 강릉은 능과 능 중간지점에 태릉선수촌이 있어 ‘조선왕릉 능역의 진정성 및 원형회복’과 ‘태릉선수촌의 등록문화재로 등록’ 등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조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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