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문화재]조선왕릉 13. 파주 장릉 (坡州 長陵)



파주 장릉(坡州 長陵, 사적 제203호, 경기 파주시 단현면 장릉로 90)은 조선 16대 임금 인조(仁祖, 1595~1649)와 왕비 인열왕후 한 씨(仁烈王后 韓 氏, 1594~1635)의 무덤으로 합장릉이다. 원래 파주시 북운천리에 능을 조성하였으나 석물 주변에 뱀들이 석물 주변 능 주변에 사갈(蛇蝎 : 뱀과 전갈로 사람이 몹시 싫어하는 동물임)이 낭자하게 석물(石物) 에 집을 짓고 있어 1731년(영조 7)에 현 위치로 이장하여 합장하였다.
 

                                                                    <파주 장릉 전경>


 장릉의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재실, 금천교, 홍살문,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향로와 어로는 숙종의 명릉처럼 양 옆에 변로를 깔았다. 


                                                                  <파주 장릉 석물 자료제공=파주시청>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으며,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혼유석은 합장릉의 형태로 2좌를 배치하였다. 장릉의 석물은 이곳으로 천장할 때 옛 능의 석물을 옮겨 와서 같이 사용하였으며, 특히   병풍석에는 기존의 구름문양과 십이지신상을 대신하여 모란꽃과 연꽃 문양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파주 장릉>


 인조 추존 원종(元宗)과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첫째 아들이며 선조의 손자로 1595년(선조 28)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607년(선조 40)에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졌으며, 광해군 때 서인의 반정인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으로 왕위에 올랐다. 인조는 재위기간 중 이괄의 난(李适의 亂, 1624), 후금의 침입을 받은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삼전도의 굴욕과 군신의 의를 맺고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간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등 내란과 외침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대동법을 실시하고, 1634년 양전(量田)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시정하였으며, 연등9분(年等九分)의 법을 정비하여 세제(稅制)를 합리화하였다.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인조는 1649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주 장릉>


 인열왕후 한 씨는 서평부원군 한준겸(韓浚謙)의 딸로, 1594년에 태어나 1610년(광해군 2)에 능양군과 가례를 올렸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열왕후는 1635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조선왕릉







 News & Company

법인명 : 주식회사 리몽 | LEEMONG corp.

등록번호 : 강원 아00093 |  발행일자 : 2011. 9. 5

발행인 :  이원석 | 편집인 : 이진경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미 기사배열 책임자 : 이원석

[25464]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강릉선교장

63, Unjeong-gil, Gangneung-si, Gangwon-do,[25464] Republic of Korea

Email : kchnews@naver.com T : 02-733-5270 F : 02-6499-9911

 ⓒ문화유산신문 당사의 기사를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링크, 게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19 KCHN All rights reserved. Hosting &  Powered by Leemong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