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아산 외암민속마을 (牙山 外巖마을)



 긴 세월 사람의 향기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 그래서 사람들은 아산 외암마을(牙山 外巖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을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라 부르는가 보다.
 외암마을은 이미 500년 전부터 우리 전통을 지키며 사는 민속마을이다. 외암마을은 언제 마을이 형성되었는지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500년 전 강씨(姜氏)와 목씨(睦氏)가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 예안이씨(禮安李氏) 이사종(李嗣宗)이 이곳에 살고 있던 진한평(陳漢平)의 맏사위가 되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정(李挺)이 낙향하여 정착하면서 외암마을은 예안이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외암(巍巖)이란 마을 이름도 이정의 6대손이며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 1677~1727)이 설화산의 형상을 따 자신의 호를 ‘외암’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외암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한자를 간편하게 ‘외암(外岩)’으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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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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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댁 사랑채>


  설화산 기슭 경사지에 자리 잡은 외암마을은 앞에는 내(川)가 흐르고 그 주변을 논과 밭이 둘러싸고 있는 한가운데 민가가 모여 있다. 6㎞에 달하는 그리 높지 않은 돌담으로 이어진 고샅길을 따라 아산 외암리 참판댁(牙山 外岩里 參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95호), 아산 건재 고택(牙山 建齋 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233호), 송화댁(松禾宅), 참봉댁 등 양반주택과 50여 가구의 초가들이 사이사이 섞여 옛 마을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외암마을 입구에 있는 반석과 석각, 당제를 지내던 느티나무, 우물 등이 남아 있고, 마을의 외형만 그대로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삶과 문화까지 대를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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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 고택 사랑채와 정원>


 먼저, '영암집'이라고도 불리우는 건재 고택으로 향한다. 외암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이 집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 이간(李柬, 1677∼1727)이 태어난 집을 건재 이상익(建齋 李相翼, 1848∼1897)이 고종 6년(1869)에 지금 모습으로 지었다고 한다. 건재 고택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를 주축으로 하여, 안채의 오른쪽에 광채를 두고, 왼쪽에는 곳간채를 두었으며, 안채 뒤편으로 가묘(家廟)를 배치하였다. 안채와 사랑채는 'ㄱ'자형 집으로 마주하여 튼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넓은 사랑마당에는 연못과 정자 등으로 구성된 정원을 꾸몄다. 돌담 밖에 초가로 된 하인집이 있다.  사랑채는 두 칸의 큰 사랑방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누마루를, 오른쪽에는 대청을 두고, 앞과 뒤로는 툇마루와 쪽마루를 꾸며 놓았다. 

 안채는 가운데 두 칸의 대청마루와 윗방, 안방이 대청 왼편에 있으며, 그 앞으로는 상부에 다락을 둔 부엌을 배치하였다. 

 안채 오른쪽에 곳간채, 왼쪽에 ‘ㄱ’자형 아래채를 두고, 위쪽에 사당을 두었다.
 사랑마당에 앞에 있는 정원은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명당수가 마당을 거쳐 연못으로 흐르게 하는 특이한 조경을 보이고 있다. 자연경관을 위주로 소나무·은행나무·감나무 등을 마당 전체에 심고 일본 정원의 기법인 거북섬을 꾸며, 전통과 외래 조경이 섞인 조선 후기 절충형 정원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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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댁 문간채 사진제공=문화재청>


 외암마을 뒤편에 자리 잡은 송화댁은 초은 이장현(樵殷 李章鉉, 1779~1841)이 송화군수를 지냈기에 ‘송화댁’이라는 택호가 붙여졌다 한다. 

 송화댁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곳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ㄱ’자형 사랑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튼 ‘口’자 형태를 하고 있다. 안마당 동측에는 중문과 함께 아래채가 있고, 서측에는 곳간채가 배치되어 안마당을 감싸주고 있다.

 초가로 된 대문간을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양 갈래의 길을 둔 넓은 정원이 사랑채 앞까지 펼쳐져 있다.

 정면 네 칸, 측면 2칸의 사랑채는 가운데에 사랑방을 두고 좌우에 한 칸 크기의 작은 마루방을 하나씩 두었으며, 작은방 뒷쪽에 작은 방을 하나씩 더 배치해 안채에서 보면 ‘ㄴ’자형이다. 정면 3칸 규모의 중문채는 쪽담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 오른쪽에 나란히 배치하였다.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ㄱ’자형 안채에는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다. 오른쪽에 자리 잡은 건넌방 앞으로는 누마루를 두었고, 왼쪽 날개채에 부엌을 배치하였다.

 

 외암마을의 서쪽 뒤편에 자리 잡은 교수댁은 조선 시대 말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를 지내고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퇴암 이성열(退菴 李聖烈, 1888~1943)이 살던 집으로, 후에 성균관 교수를 지낸 이용구(李用龜, 1854~?)가 살면서 교수댁이라 이름 붙여졌다. 원래는 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채, 사당 등 연못까지 갖춘 큰 규모의 집이었지만 지금은 문간채와 안채, 사당만 남아 있다.

 정면 7칸 규모의 문간채를 지나 안채영역으로 들어서면, ‘ㄱ’자형 안채는 정면 다섯칸 반, 측면 한 칸 반 규모 대청을 사이에 두고 안방, 건넌방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안채 오른쪽에 사당을 두었다. 

 교수댁 정원은 건재 고택이나 송화댁 정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다른 지방의 양반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마을 뒤편 설화산에서 흘러온 물을 수로를 만들어 마당으로 끌여 들여 굽이치게 만들고 주변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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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살기 좋은 마을 10선’에도 선정되기도 한 아산 외암마을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문화를 지키며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전통민속마을다. 마을에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정월에는 장승제와 동제를 지내고, 10월에는 짚풀문화제 등을 개최하고 있다. 

 외암마을은 그동안 <덕이>, <야인시대>와 같은 드라마나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과 같은 영화 촬영 장소로도 많이 알려져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한류를 이끌고 있는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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