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릉(靖陵, 사적 제199호, 서울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은 조선 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년)의 능이다. 원래 중종의 능은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 씨(章敬王后 尹 氏)의 무덤인 고양 서삼릉 내에 있는 희릉(禧陵)의 서쪽에 있었으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 씨(文定王后 尹 氏)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여겨 17년 후인 1562년(명종 17)에 현 위치로 천장하였다.

<서울 정릉 사진제공=문화재청>

중종에게는 3명의 왕후와 7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사후에는 왕 한 분만 모신 단릉으로 조성되었다. 홍살문,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고 능침은 선릉과 같이 《국조오례의》를 따라서 구성되어 있다. 석양과 석호의 전체적인 자세는 선릉과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문무석인은 높이가 3m가 넘을 정도로 큰 편이며, 얼굴의 퉁방울눈이 특이하며 코 부분이 훼손되고 검게 그을려 있다.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의 사이에 태어난 중종은 성종의 2남이며 연산군(燕山君)의 이복동생이다. 1494년(성종 25) 진성대군(晋城大君)에 봉해지고, 1506년 박원종이 성희안, 유순정, 신윤무 등과 함께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들어 반정을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자 새로운 개혁정치를 표방한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내세워 왕도정치를 실시하려고 하였다.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사림을 등용하였으나, 소격서 폐지, 위훈삭제 등 급진적인 정책이 큰 반발을 불러와 기묘사화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향약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어 유교적 향촌질서가 자리를 잡았으며,《삼강행실(三綱行實)》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많은 서적이 편찬·간행하였다. 경제적으로도 동전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도량형의 통일을 꾀하였으며, 사치를 금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울 정릉 사진제공=강남구청>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선정릉은 우거진 소나무 숲 속 사이로 산책길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제공해 주는 휴식공간이자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 선정릉 은행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자료제공=문화재청, 조선왕릉
서울 정릉(靖陵, 사적 제199호, 서울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은 조선 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년)의 능이다. 원래 중종의 능은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 씨(章敬王后 尹 氏)의 무덤인 고양 서삼릉 내에 있는 희릉(禧陵)의 서쪽에 있었으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 씨(文定王后 尹 氏)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여겨 17년 후인 1562년(명종 17)에 현 위치로 천장하였다.
<서울 정릉 사진제공=문화재청>
중종에게는 3명의 왕후와 7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사후에는 왕 한 분만 모신 단릉으로 조성되었다. 홍살문,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고 능침은 선릉과 같이 《국조오례의》를 따라서 구성되어 있다. 석양과 석호의 전체적인 자세는 선릉과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문무석인은 높이가 3m가 넘을 정도로 큰 편이며, 얼굴의 퉁방울눈이 특이하며 코 부분이 훼손되고 검게 그을려 있다.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의 사이에 태어난 중종은 성종의 2남이며 연산군(燕山君)의 이복동생이다. 1494년(성종 25) 진성대군(晋城大君)에 봉해지고, 1506년 박원종이 성희안, 유순정, 신윤무 등과 함께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들어 반정을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자 새로운 개혁정치를 표방한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내세워 왕도정치를 실시하려고 하였다.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사림을 등용하였으나, 소격서 폐지, 위훈삭제 등 급진적인 정책이 큰 반발을 불러와 기묘사화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향약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어 유교적 향촌질서가 자리를 잡았으며,《삼강행실(三綱行實)》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많은 서적이 편찬·간행하였다. 경제적으로도 동전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도량형의 통일을 꾀하였으며, 사치를 금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울 정릉 사진제공=강남구청>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선정릉은 우거진 소나무 숲 속 사이로 산책길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제공해 주는 휴식공간이자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 선정릉 은행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자료제공=문화재청, 조선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