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 도래마을은 풍산홍씨(豊山洪氏) 집성촌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한옥마을이다. 이 마을은 고려 시대 남평문씨(南平文氏)가 처음 마을을 형성하여 조선 세조 때 한성우윤(漢城右尹) 최거가 탐진현감으로 가던 중 풍광이 아름다워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 후 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洪漢義)가 기묘사화의 화를 염려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이 마을에 은거하면서 입향조가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한 때는 마을에서 《도천동지(道川洞誌)》라는 마을지를 펴낼 정도로 번성했다.
도래마을은 노령산맥의 기운을 받은 식산(食山)이 마을의 주산이 되고, 주변에 호랑이 형국의 감태봉, 용이 송호에 꼬리를 담근 형국의 박령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예로부터 식량이 풍부하고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고장이라 여겼다.
‘도래’라는 마을 지명도 뒷산인 식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져 ‘내천(川)자’를 이룬다 해 도천(道川)마을로 불렸다가, 이후 ‘천(川)’의 우리말이 ‘내’이므로 ‘도내’가 되었다가 부르기 쉽게 ‘도래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양벽정 전경>
도래마을을 들어서면 새로 조성된 인공연못 뒤로 마을의 정자인 양벽정(樣壁亭)과 조선 시대 학당으로 사용되던 영호정(永護亭)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하여 형성된 마을은 구불구불 고샅길을 이어가며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흙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옛 정취가 묻어나는 나주 홍기응 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51호), 나주 홍기헌 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65호), 나주 홍기창 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제9호)을 비롯해 시민유산으로 지정한 도래마을 옛집 등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지은 고택들을 만나게 된다.
도래마을 풍산홍씨 종가집으로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나주 홍기응 가옥 (羅州 洪起膺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51호, 전남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18-1)으로 향한다. 1892년에 건립된 안채, 1904년에 건립된 사랑채를 비롯해 솟을대문을 갖춘 문간채, 곳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건물 사이에 담을 둘러놓아 각각 독립공간처럼 꾸며놓아 다소 폐쇄적이긴 하지만, 작은 문을 만들어 서로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사랑채 전경>
남향으로 배치된 ‘ㄱ’자형 사랑채는 왼쪽부터 대청과 사랑방을 배치하고, 꺾어져 있는 오른쪽에는 작은사랑방과 부엌, 누마루를 두었다. 사랑방은 위·아래로 나뉘어 뒷쪽에는 골방을 두었고,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양옆으로는 쪽마루를 두어 편리하도록 했다. 특히 사랑채의 일부를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장서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마을의 웃어른으로 항상 책을 곁에 두고 공부하는 모범을 보인 건 아닐는지.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
이곳을 방문하면 꼭 한 번 눈길이 가는 곳이 또 하나 있다. 문간채와 마주한 담장에 기와를 마주 얹어 작은 구멍을 내어 대문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각 건물을 둘러싼 담장으로 인해 그리 넓은 정원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앞마당에는 석류나무, 배롱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심어놓은 작은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나무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진 듯하다. 자손의 번영을 상징하는 석류나무,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선비의 청렴함을 상징하는 배롱나무 등 자연과 벗하며 자신을 수양하던 주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문간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문간채는 6칸으로 가운데 솟을 대문을 두고 양쪽에는 행랑방과 마구간을 각각 배치했다.

<안채 전경>
서향으로 앉은 ‘一’자형 안채는 정면 6칸으로, 왼쪽부터 부엌방,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을 배치하고 앞쪽과 양옆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대청 중 1칸은 안대청과 바깥대청으로 구분했으며, 바깥대청에는 판문을 달아 놓았다. 건넌방에는 아궁이가 달린 별도의 작은 부엌을 두었다.
사당은 툇마루를 갖춘 3칸 건물로 별도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나란히 배치했다.

<담장 너머에서도 백일홍이 핀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상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남도 사대부가의 대표적인 가옥으로 손꼽히는 나주 홍기응 가옥에서는 선조가 물려준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켜내고 있다. 조금은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래마을에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문화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라남도 나주 도래마을은 풍산홍씨(豊山洪氏) 집성촌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한옥마을이다. 이 마을은 고려 시대 남평문씨(南平文氏)가 처음 마을을 형성하여 조선 세조 때 한성우윤(漢城右尹) 최거가 탐진현감으로 가던 중 풍광이 아름다워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 후 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洪漢義)가 기묘사화의 화를 염려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이 마을에 은거하면서 입향조가 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한 때는 마을에서 《도천동지(道川洞誌)》라는 마을지를 펴낼 정도로 번성했다.
도래마을은 노령산맥의 기운을 받은 식산(食山)이 마을의 주산이 되고, 주변에 호랑이 형국의 감태봉, 용이 송호에 꼬리를 담근 형국의 박령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예로부터 식량이 풍부하고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고장이라 여겼다.
‘도래’라는 마을 지명도 뒷산인 식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져 ‘내천(川)자’를 이룬다 해 도천(道川)마을로 불렸다가, 이후 ‘천(川)’의 우리말이 ‘내’이므로 ‘도내’가 되었다가 부르기 쉽게 ‘도래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양벽정 전경>
도래마을을 들어서면 새로 조성된 인공연못 뒤로 마을의 정자인 양벽정(樣壁亭)과 조선 시대 학당으로 사용되던 영호정(永護亭)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하여 형성된 마을은 구불구불 고샅길을 이어가며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흙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옛 정취가 묻어나는 나주 홍기응 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51호), 나주 홍기헌 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65호), 나주 홍기창 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제9호)을 비롯해 시민유산으로 지정한 도래마을 옛집 등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 지은 고택들을 만나게 된다.
도래마을 풍산홍씨 종가집으로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나주 홍기응 가옥 (羅州 洪起膺 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51호, 전남 나주시 다도면 동력길 18-1)으로 향한다. 1892년에 건립된 안채, 1904년에 건립된 사랑채를 비롯해 솟을대문을 갖춘 문간채, 곳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건물 사이에 담을 둘러놓아 각각 독립공간처럼 꾸며놓아 다소 폐쇄적이긴 하지만, 작은 문을 만들어 서로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사랑채 전경>
남향으로 배치된 ‘ㄱ’자형 사랑채는 왼쪽부터 대청과 사랑방을 배치하고, 꺾어져 있는 오른쪽에는 작은사랑방과 부엌, 누마루를 두었다. 사랑방은 위·아래로 나뉘어 뒷쪽에는 골방을 두었고,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양옆으로는 쪽마루를 두어 편리하도록 했다. 특히 사랑채의 일부를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장서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마을의 웃어른으로 항상 책을 곁에 두고 공부하는 모범을 보인 건 아닐는지.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
이곳을 방문하면 꼭 한 번 눈길이 가는 곳이 또 하나 있다. 문간채와 마주한 담장에 기와를 마주 얹어 작은 구멍을 내어 대문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각 건물을 둘러싼 담장으로 인해 그리 넓은 정원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앞마당에는 석류나무, 배롱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심어놓은 작은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나무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진 듯하다. 자손의 번영을 상징하는 석류나무,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선비의 청렴함을 상징하는 배롱나무 등 자연과 벗하며 자신을 수양하던 주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문간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문간채는 6칸으로 가운데 솟을 대문을 두고 양쪽에는 행랑방과 마구간을 각각 배치했다.
<안채 전경>
서향으로 앉은 ‘一’자형 안채는 정면 6칸으로, 왼쪽부터 부엌방,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을 배치하고 앞쪽과 양옆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대청 중 1칸은 안대청과 바깥대청으로 구분했으며, 바깥대청에는 판문을 달아 놓았다. 건넌방에는 아궁이가 달린 별도의 작은 부엌을 두었다.
사당은 툇마루를 갖춘 3칸 건물로 별도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나란히 배치했다.
<담장 너머에서도 백일홍이 핀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상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남도 사대부가의 대표적인 가옥으로 손꼽히는 나주 홍기응 가옥에서는 선조가 물려준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켜내고 있다. 조금은 느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래마을에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문화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