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북장단에 맞춰 전승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연하는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이다. 1963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판소리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뿌리를 두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준근 '기산풍속도첩'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판소리는 희노애락을 담은 이야기에 고수(鼓手)는 북장단을 쳐서 반주하고, '으이', '좋지',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군다. 추임새에 신이 난 소리꾼은 구경꾼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웃기고 울리기도 한다.
판소리는 전통사회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민중예술로, 광대라고 불려진 하층계급의 예능인들에 의하여 가창·전승되어 왔으며, 그들은 관아나 마을에서 노래했고, 때로는 양반·부호들의 내정(內庭)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는 부르는 창법에 따라 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는 ‘동편제(東便制)’라고 부르며, 전라도 서남지역의 판소리는 ‘서편제(西便制)’라고 부른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고 부른다. 고수(鼓手)는 북장단을 쳐서 반주하고, '으이', '좋지',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소리꾼>
<고수>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가 쓰이는데, 이 중에서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장단을 기본장단으로 해 이야기에 나타난 긴박하고 한가한 여러 극적 상황에 따라 빠르고 느린 장단을 가려서 쓴다.
판소리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1754년(영조 30) 유진한의 《만화집 晩華集》에 나온 <춘향가>이고, 조선 중기에는 소리광대가 여러 이야기를 판소리로 짜서 불렀던 중 열둘을 골라 ‘판소리 열두마당’이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와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에 나타난다. 하지만 조선 말기로 접어들면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다.
판소리 명창은 조선 시대 영조 말기 정조 초기에 하한담·최선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순조 무렵에는 권삼득·황해천·송흥록·신만엽·방만춘 등의 명창이 활동했다. 또 고종 초까지는 박유전·박만순·이날치·김세종·장자백 등의 명창이 활동했다. 20세기 초까지는 박기홍·전도성·김창환·이동백·김창룡·김채만·정정렬 등이 활동했다. 서양의 외래문화가 유입되면서 판소리는 창극(唱劇)으로 양식이 바뀌고 점차 무대화되다가 여성국극단에 의해 여성창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오늘날 판소리 예능보유자로는 춘향가에 김여란·김연수·김소희(본명 김순옥(金順玉)), 심청가에 정권진, 흥보가에 박녹주·강도근, 수궁가에 정광수(본명 정용훈(丁榕薰))·박초월, 적벽가에 박동진·박봉술·한승호(본명 한갑주(韓甲珠))가 인정되었으며 이후 춘향가에 오정숙, 심청가에 성창순·조상현이 인정되었다. 또한 춘향가에 성우향(본명 판례), 흥보가에 박송희(본명 정자), 적벽가에 송순섭이 새로 인정되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북장단에 맞춰 전승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연하는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이다. 1963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판소리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뿌리를 두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준근 '기산풍속도첩'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판소리는 희노애락을 담은 이야기에 고수(鼓手)는 북장단을 쳐서 반주하고, '으이', '좋지',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군다. 추임새에 신이 난 소리꾼은 구경꾼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웃기고 울리기도 한다.
판소리는 전통사회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민중예술로, 광대라고 불려진 하층계급의 예능인들에 의하여 가창·전승되어 왔으며, 그들은 관아나 마을에서 노래했고, 때로는 양반·부호들의 내정(內庭)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는 부르는 창법에 따라 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는 ‘동편제(東便制)’라고 부르며, 전라도 서남지역의 판소리는 ‘서편제(西便制)’라고 부른다.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고 부른다. 고수(鼓手)는 북장단을 쳐서 반주하고, '으이', '좋지',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소리꾼>
<고수>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가 쓰이는데, 이 중에서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장단을 기본장단으로 해 이야기에 나타난 긴박하고 한가한 여러 극적 상황에 따라 빠르고 느린 장단을 가려서 쓴다.
판소리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1754년(영조 30) 유진한의 《만화집 晩華集》에 나온 <춘향가>이고, 조선 중기에는 소리광대가 여러 이야기를 판소리로 짜서 불렀던 중 열둘을 골라 ‘판소리 열두마당’이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 觀優戱》와 정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 朝鮮唱劇史》에 나타난다. 하지만 조선 말기로 접어들면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다.
판소리 명창은 조선 시대 영조 말기 정조 초기에 하한담·최선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순조 무렵에는 권삼득·황해천·송흥록·신만엽·방만춘 등의 명창이 활동했다. 또 고종 초까지는 박유전·박만순·이날치·김세종·장자백 등의 명창이 활동했다. 20세기 초까지는 박기홍·전도성·김창환·이동백·김창룡·김채만·정정렬 등이 활동했다. 서양의 외래문화가 유입되면서 판소리는 창극(唱劇)으로 양식이 바뀌고 점차 무대화되다가 여성국극단에 의해 여성창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오늘날 판소리 예능보유자로는 춘향가에 김여란·김연수·김소희(본명 김순옥(金順玉)), 심청가에 정권진, 흥보가에 박녹주·강도근, 수궁가에 정광수(본명 정용훈(丁榕薰))·박초월, 적벽가에 박동진·박봉술·한승호(본명 한갑주(韓甲珠))가 인정되었으며 이후 춘향가에 오정숙, 심청가에 성창순·조상현이 인정되었다. 또한 춘향가에 성우향(본명 판례), 흥보가에 박송희(본명 정자), 적벽가에 송순섭이 새로 인정되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