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 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 4호 정춘모 입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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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몸 다 바쳐 갓을 지켜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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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무형문화재 4호 입자장 정춘모 선생>



예로부터 선비의 인격과 체면을 상징해온 갓은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저마다 각각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옛 선조들의 일상과 늘 함께 해 오던 전통사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길거리에서 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이젠 실생활에 사용하지 않아 찾아주는 이 조차 없고, 드라마나 영화, 공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갓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입자장’이라고 부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보유자(입자장) 정춘모 선생은 오로지 우리의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 한 올 한 올 정성들여 갓을 만들고 있는 장인이다. 
“제가 갓에 손을 놓아 버리면 갓은 누가 만들어요. 우리의 전통인데 끊기게 할 수는 없잖아요.” 라고 하시며 씁쓸하게 웃으시는 선생의 모습에 갓에 대한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갓과 나는 함께할 운명이었나봐요.”

정춘모 선생은 1940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당시 예천에서도 갓 만드는 곳이 있어 어릴 적부터 갓 만드는 일을 배웠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갓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된 것은 스무 살 무렵 대구에서 유학을 할 때였다. 운명이었나 보다. 선생은 그 당시 하숙을 하면서 농장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이 하숙하던 집이 고재구, 전덕기 선생을 비롯한 통영 입자장인들이 모여 갓을 만들던 집이었다. 처음에는 잔심부름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우고 익혔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갓이 실생활에서 멀어지게 되자 스승들과 함께 선생도 통영으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정식으로 갓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되었고, 74년 전수 장학생이 되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되었지만 이미 70년대의 갓은 ‘지는 해’였다. 시골에서 조차 찾지 않는 갓이었다. 장인들은 세상을 뜨고 생계유지를 위해 그 일을 하던 분들과 자제들은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선생은 갓일을 버릴 수가 없었다. 같이 배우던 이들조차 전부 떠났지만 선생은 완벽한 갓을 만들기 위해 갓일에 더욱 몰두하였고, 지금까지 평생 갓과 함께 하고 있다. 

“갓 중에 최고는 진사립이에요.”

5c6ba6cde77d1.jpg갓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같이 변화하면서 그 종류도 다양화 되었다. 또한 갓 한 개를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1년에 고작해야 10개 남짓 만들 수 있는 정도이다. 갓을 만드는 데는 가느다란 대나무로 갓의 테를 만드는 ‘양태’일, 말총으로 모자집을 만드는 ‘총모자’일, 양태와 총모자를 맞추어 갓을 완성시키는 ‘입자’일 등 총 3가지 공정을 거치게 된다. 양태일 24과정, 총모자일 17과정, 입자일 10과정 등 총 51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갓 한 개가 완성된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야 완성되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갓을 정말 가까이서 처음 봐요. 까맣고 윤기가 흐르는 게 너무 예쁘네요.”라며 갓과 갓집을 신기하게 쳐다보자 선생은 환하게 웃으시며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신다. 

“진사립이에요. 양태를 명주 세사로 엮어요. 갓 중에 최고죠. 이런 갓들은 진사립에 따라가지 못해요. 벌써 광택부터 다른걸요.” 하지만 갓 중에 최고라는 진사립은 선생의 전수관 내에서조차 물건을 볼 수가 없다. “사진으로 밖에 볼 수가 없네요.”, “제대로 진사립을 만들려면 신명을 바쳐야 해요. 누가 이제 진사립을 만들겠어요.” 선생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5c6ba6eac589b.jpg“갓은 제 전부이자 자존심이에요.”

“이쪽 좀 보세요. 우리 스승님들이에요. 한평생을 갓 만드는 일에 바친 분들이에요.”, “저랑 같이 일을 배우던 친구들이에요. 지금은 모두다 떠났어요. 저까지 떠나면 통영갓은 누가 지켜요.” 전수관 한쪽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시며 갓일을 배우면서 있었던 일과 배우는 과정을 이야기 해주셨다. 물론 선생에게도 전수생이 있다. 하지만 선생은 전수생들을 갓일만 하도록 하지 않는다. 다들 직장을 가지고 평일에는 일을 하면서 토, 일에만 전수관에 나와 갓일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주변에 많은 장인 분들과 갓일을 배우다 생계문제로 일을 포기해야했던 분들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소중한 전통 문화인 갓을 지키겠다는 선생의 자존심으로 통영갓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통영갓도 끝날 것 같아” 하며 웃고 계신 선생의 얼굴이 한없이 쓸쓸해보였다.

◆ 입자장이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갓일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양태(갓의 테)’일, ‘총모자(모자집)’일, 양태와 총모자를 거두어 맞추는‘입자’일이 있다.
이 중‘입자’일은 양태와 총모자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을 해서 갓을 완성시키는 일인데 이 일을 담당하는 것이‘입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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