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아름다움의 소반, 제 혼을 담아 봅니다.”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 유석근 명장

소박함에 담겨 있는 세밀한 아름다움. 과거 우리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생활필수품 ‘작은 상’ 소반. 오랜 세월 우리의 밥상이요, 다과상이며 술상이고 책상이던.
생활용품에서 전통예술품으로 바뀌어 버린 소반에 남다른 매력을 느끼고, 나무를 깎고 옻칠을 하며 새로운 소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 유석근 선생.
선생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 주차장 한편에 자리 잡은 선생의 작업장을 찾았다. 한쪽 벽 가득 쌓여서 건조되고 있는 느티나무 목재와 다양한 연장들, 옻칠 도구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195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정수직업훈련원’에 입학한다. 선생은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비로 교육해 주는 한편 취업도 보장되다 보니 인기가 많던 이 훈련원 목공예과를 1회로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전송규 선생과 제갈재호 선생 문하에서 6년간 목공예를 배우게 된다.

형편이 어려워 시작한 목공예였지만, 참 열심히 했다. 종이와 펜을 항시 가지고 다니며 무엇이든 스케치하는 습관을 들이고, 잠들기 전엔 정밀묘사로 무엇인가를 꼭 그리고서야 잠이 들었다. 관찰력과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든지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정말 기초적인 것부터 전력을 기울였다는 유석근 선생.
31세 되던 1988년 11월. 타고난 감각과 탄탄한 기초, 뼈저린 노력 덕에 선생은 ‘제1회 명장대회’에서 1등을 하여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가 된다. 각 시도 예선을 거쳐 올라온 30여 명의 이름난 장인들과 벌였던 경합에서 같이 출전했던 스승과 목공예 선배들을 전부 제친 것이다.
선생은 이른 나이에 오른 명장의 자리가 항상 조심스럽다. 소반 한 개를 제작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성을 들인다. 선생께 대표작에 대해 물으니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다시 보면 항상 뭔가 아쉽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고 싶고…… 내가 만들어 놓은 소반들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이 없는데 대표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며 웃는다.
“같이 나무 깎는 사람들끼리는 경쟁자가 아닌 동업자가 되어야 해요. 누구든지 소목을 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내 기술 전부를 전수해 줄 것입니다.”라며 평소 자신의 신념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선생. 부(富)와는 거리가 멀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든 탓에 선뜻 이 일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는 선생의 모습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소위 말해 돈이 되는 작업을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원래의 전통 예술을 다들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죠. 제가 소반하고 운명이었나 봐요.”
“절제된 아름다움의 소반, 제 혼을 담아 봅니다.”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 유석근 명장
소박함에 담겨 있는 세밀한 아름다움. 과거 우리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생활필수품 ‘작은 상’ 소반. 오랜 세월 우리의 밥상이요, 다과상이며 술상이고 책상이던.
생활용품에서 전통예술품으로 바뀌어 버린 소반에 남다른 매력을 느끼고, 나무를 깎고 옻칠을 하며 새로운 소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 유석근 선생.
선생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 주차장 한편에 자리 잡은 선생의 작업장을 찾았다. 한쪽 벽 가득 쌓여서 건조되고 있는 느티나무 목재와 다양한 연장들, 옻칠 도구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195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정수직업훈련원’에 입학한다. 선생은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비로 교육해 주는 한편 취업도 보장되다 보니 인기가 많던 이 훈련원 목공예과를 1회로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전송규 선생과 제갈재호 선생 문하에서 6년간 목공예를 배우게 된다.
형편이 어려워 시작한 목공예였지만, 참 열심히 했다. 종이와 펜을 항시 가지고 다니며 무엇이든 스케치하는 습관을 들이고, 잠들기 전엔 정밀묘사로 무엇인가를 꼭 그리고서야 잠이 들었다. 관찰력과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든지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정말 기초적인 것부터 전력을 기울였다는 유석근 선생.
31세 되던 1988년 11월. 타고난 감각과 탄탄한 기초, 뼈저린 노력 덕에 선생은 ‘제1회 명장대회’에서 1등을 하여 ‘대한민국 목공예 명장 1호’가 된다. 각 시도 예선을 거쳐 올라온 30여 명의 이름난 장인들과 벌였던 경합에서 같이 출전했던 스승과 목공예 선배들을 전부 제친 것이다.
선생은 이른 나이에 오른 명장의 자리가 항상 조심스럽다. 소반 한 개를 제작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성을 들인다. 선생께 대표작에 대해 물으니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다시 보면 항상 뭔가 아쉽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고 싶고…… 내가 만들어 놓은 소반들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이 없는데 대표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며 웃는다.
“같이 나무 깎는 사람들끼리는 경쟁자가 아닌 동업자가 되어야 해요. 누구든지 소목을 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내 기술 전부를 전수해 줄 것입니다.”라며 평소 자신의 신념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선생. 부(富)와는 거리가 멀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든 탓에 선뜻 이 일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는 선생의 모습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소위 말해 돈이 되는 작업을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원래의 전통 예술을 다들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죠. 제가 소반하고 운명이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