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우리 목가구,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소목장(小木匠)은 집 외에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즉, 세간을 만드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날카로운 대패·끌·인두 등을 사용해 거친 나무를 자르고, 켜고, 문질러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소목장.
경기도 용인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 전통 가구를 만들며 평생을 나무와 함께해 온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인 소목장 박명배 선생께서 작업하고 있는 ‘영산산방’을 찾았다. 이른 아침, 선생은 작업실에서 직접 디자인한 ‘사방탁자’의 설계도를 그리고 계셨다.
전통 목가구를 만들며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친척 형의 소개로 18세 되던 1968년, 최회권 서라벌예대 공예과 교수가 운영하는 ‘오니 공예미술 연구소’에서 일하며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1년 최회권 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되자 허기행 선생에게 전통 가구의 짜맞춤 기법을 배우게 된다. 소목 일에 발을 들인 지 13년 만인 1981년 독립, 개인공방을 차려 운영하기 시작한다.
어떤 일이든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선생은 목가구를 만드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재료인 나무의 선택과 가공에 제일 많이 공을 들인다. 아무 나무나 베어다가 가구를 만들 수는 없는 법. 갑자기 수분이 빠져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겨울에 나무를 베어 잘린 면에 풀이나 기름 같은 것을 발라 2년 정도 숙성시킨다. 그리고 실외에서 3년, 실내에서 2년 정도 더 놓아둔 후에야 비로소 가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진다. 이처럼 가구 만드는 기초재료가 되는 데만도 무려 7년여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그냥 좋았어요. 성취감도 느꼈고,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느꼈던 행복과 즐거움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선생은 소목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사랑방을 구성하는 가구 즉, 사대부의 정신세계와 사상, 문화 등을 반영하는 간결하고 곧은 ‘사방탁자’와 ‘서안(書案)’ 같은 가구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선생의 작품 중에는 사랑방 가구가 많다.
그렇게 공방에서 묵묵히 가구를 만들어 오던 선생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의장’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그때 대통령상을 받은 ‘의장’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예전엔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거든요. 생계에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출품했던 건데, 대통령상까지 받게 됐네요. 작은 상이라도 받았으면 했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때 받은 상은 선생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생계 해결뿐만 아니라 1998년 명장 선정,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으로 인정받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선생에게는 큰 포부가 생겼다. 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공예 즉, 소목 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단다. 그래서 선생은 요즘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전승자가 아예 없거나 적어 고민인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소목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란다. 현재 선생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만도 7명. 또, 일주일에 3번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제 경험이나 지식이 우리 공예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다 줄 생각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 생계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장인 정신 하나로, 우리 공예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선생의 밝은 웃음에 우리 공예의 빛나는 미래가 함께하고 있었다. / - 나정은 기자

그렇게 공방에서 묵묵히 가구를 만들어 오던 선생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의장’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그때 대통령상을 받은 ‘의장’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예전엔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거든요. 생계에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출품했던 건데, 대통령상까지 받게 됐네요. 작은 상이라도 받았으면 했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때 받은 상은 선생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생계 해결뿐만 아니라 1998년 명장 선정,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으로 인정받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선생에게는 큰 포부가 생겼다. 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공예 즉, 소목 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단다. 그래서 선생은 요즘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전승자가 아예 없거나 적어 고민인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소목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란다. 현재 선생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만도 7명. 또, 일주일에 3번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제 경험이나 지식이 우리 공예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다 줄 생각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 생계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장인 정신 하나로, 우리 공예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선생의 밝은 웃음에 우리 공예의 빛나는 미래가 함께하고 있었다.
"뛰어난 우리 목가구, 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소목장(小木匠)은 집 외에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즉, 세간을 만드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날카로운 대패·끌·인두 등을 사용해 거친 나무를 자르고, 켜고, 문질러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소목장.
경기도 용인의 한 조용한 시골 마을. 전통 가구를 만들며 평생을 나무와 함께해 온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인 소목장 박명배 선생께서 작업하고 있는 ‘영산산방’을 찾았다. 이른 아침, 선생은 작업실에서 직접 디자인한 ‘사방탁자’의 설계도를 그리고 계셨다.
전통 목가구를 만들며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친척 형의 소개로 18세 되던 1968년, 최회권 서라벌예대 공예과 교수가 운영하는 ‘오니 공예미술 연구소’에서 일하며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1년 최회권 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되자 허기행 선생에게 전통 가구의 짜맞춤 기법을 배우게 된다. 소목 일에 발을 들인 지 13년 만인 1981년 독립, 개인공방을 차려 운영하기 시작한다.
어떤 일이든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선생은 목가구를 만드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재료인 나무의 선택과 가공에 제일 많이 공을 들인다. 아무 나무나 베어다가 가구를 만들 수는 없는 법. 갑자기 수분이 빠져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겨울에 나무를 베어 잘린 면에 풀이나 기름 같은 것을 발라 2년 정도 숙성시킨다. 그리고 실외에서 3년, 실내에서 2년 정도 더 놓아둔 후에야 비로소 가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진다. 이처럼 가구 만드는 기초재료가 되는 데만도 무려 7년여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그냥 좋았어요. 성취감도 느꼈고,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느꼈던 행복과 즐거움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선생은 소목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사랑방을 구성하는 가구 즉, 사대부의 정신세계와 사상, 문화 등을 반영하는 간결하고 곧은 ‘사방탁자’와 ‘서안(書案)’ 같은 가구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선생의 작품 중에는 사랑방 가구가 많다.
그렇게 공방에서 묵묵히 가구를 만들어 오던 선생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의장’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그때 대통령상을 받은 ‘의장’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예전엔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거든요. 생계에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출품했던 건데, 대통령상까지 받게 됐네요. 작은 상이라도 받았으면 했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때 받은 상은 선생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생계 해결뿐만 아니라 1998년 명장 선정,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으로 인정받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선생에게는 큰 포부가 생겼다. 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공예 즉, 소목 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단다. 그래서 선생은 요즘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전승자가 아예 없거나 적어 고민인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소목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란다. 현재 선생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만도 7명. 또, 일주일에 3번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제 경험이나 지식이 우리 공예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다 줄 생각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 생계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장인 정신 하나로, 우리 공예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선생의 밝은 웃음에 우리 공예의 빛나는 미래가 함께하고 있었다. / - 나정은 기자
그렇게 공방에서 묵묵히 가구를 만들어 오던 선생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의장’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그때 대통령상을 받은 ‘의장’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예전엔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거든요. 생계에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출품했던 건데, 대통령상까지 받게 됐네요. 작은 상이라도 받았으면 했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이때 받은 상은 선생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생계 해결뿐만 아니라 1998년 명장 선정,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으로 인정받는 데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선생에게는 큰 포부가 생겼다. 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공예 즉, 소목 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단다. 그래서 선생은 요즘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전승자가 아예 없거나 적어 고민인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소목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란다. 현재 선생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만도 7명. 또, 일주일에 3번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제 경험이나 지식이 우리 공예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다 줄 생각입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 생계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장인 정신 하나로, 우리 공예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선생의 밝은 웃음에 우리 공예의 빛나는 미래가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