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玉)은 금·은과 함께 동양 문화권을 대표하는 보석으로, 옥으로 여러 가지 기물이나 장신구를 제작하는 장인을 옥장(玉匠)이라 한다.
동양에서 옥이 귀히 여겨진 이유는 중국에서 옥을 음양오행의 다섯 가지 덕인 인(仁)·의(義)·지(智)·용(勇)·각(角)을 상징하는 장신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옥의 온화한 광택을 인(仁)으로, 투명하고 맑은 빛깔을 의(義)로, 두드리면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지(智)로, 깨져도 굽히지 않는 성질을 용(勇)에 비유하였으며,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내지만 절대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을 각(角)이라고 했다.
옥은 백색, 녹색, 암벽색, 암녹색, 황색, 적갈색, 흑색 등으로 다양하며, 경옥(硬玉)과 연옥(軟玉) 등 두 종류로 나눠지는데, 경옥은 경도(硬度)가 6.5~7도, 연옥은 6~6.5도까지를 말한다. 경옥은 연옥보다 단단하고 색이 아름다워 보석으로서는 더 값어치가 있다. 주로 반지 같은 장신구로 사용되는데, 고가의 비취가 경옥에 포함된다.

옥은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됐다. 주로 장신구로 이용됐고, 색깔로 조정의 계위의 상·하를 정하기도 하고 장식과 의식을 위해 비취를 널리 사용하였으며, 사회계급의 신분을 구분하는 드리개와 악기인 옥경(玉磬), 약재 및 의료용구 등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기 시대부터 옥이 사용되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국 시대에는 상류층의 중요한 장신구로써 옥이 매우 애용되었는데, 이는 여러 고분에서 출토된 곱은옥, 구슬옥, 대롱옥 등 주옥류(珠玉類)와 진평왕의 옥허리띠 등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옥제품은 고려 시대에 와서 조각된 옥제 장식품의 형태로 발전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재료의 확보가 어렵고 왕족과 특수계층에 한해 지닐 수 있는 귀한 공예품이였기에 옥공예를 다루는 공인의 수를 국가에서 제한해 그 수가 극히 적었다.
옥은 가공에 있어서도 동공예 제조기술과는 판이하게 달라 정으로 쪼아 다듬어 만드는 것이 아닌 일일이 갈아 제작한다. 옥 제작은 전통적인 옥 제작 방법과 공구 등이 문헌을 통해 전하고 있진 않으나 보통 채색-디자인-절단-성형-세부조각-광택 등 6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각 공정에 따라 절단공구인 쇠톱, 구멍을 뚫는 활비비(활빙개), 연마공구인 갈이틀, 물레 등 다양한 공구들이 사용되는데, 세밀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많은 공구가 필요하다.
옥공예는 고가의 원석을 다루기 때문에 채석 및 밑그림 그리기 등 초기단계에서부터 정확한 예측이 필수적이며, 정교한 조각기능 뿐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이 요구된다. 옥장은 1996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됐으며, 장주원 선생을 기능보유자로 인정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장주원 선생은 금은세공일을 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세공일을 접할 수 있었다. 옥공예는 27세에 시작했으며, 스승도 없이 혼자 시작한 옥공예였기에 수시로 대만을 드나들며 연구하고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해 내고자 노력해왔다. 선생은 재래식 옥 제작방법을 고수하며 옥을 제작하고 있는데 특히 투각기법에 능해 향로, 주전자 등을 섬세하게 조각하고 연속된 고리를 깎는 기술이 뛰어나다. 현재는 지난 2005년에 목포에 개관한 옥공예전시관에서 사람들에게 옥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옥(玉)은 금·은과 함께 동양 문화권을 대표하는 보석으로, 옥으로 여러 가지 기물이나 장신구를 제작하는 장인을 옥장(玉匠)이라 한다.
동양에서 옥이 귀히 여겨진 이유는 중국에서 옥을 음양오행의 다섯 가지 덕인 인(仁)·의(義)·지(智)·용(勇)·각(角)을 상징하는 장신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옥의 온화한 광택을 인(仁)으로, 투명하고 맑은 빛깔을 의(義)로, 두드리면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지(智)로, 깨져도 굽히지 않는 성질을 용(勇)에 비유하였으며, 예리하면서도 상처를 내지만 절대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을 각(角)이라고 했다.
옥은 백색, 녹색, 암벽색, 암녹색, 황색, 적갈색, 흑색 등으로 다양하며, 경옥(硬玉)과 연옥(軟玉) 등 두 종류로 나눠지는데, 경옥은 경도(硬度)가 6.5~7도, 연옥은 6~6.5도까지를 말한다. 경옥은 연옥보다 단단하고 색이 아름다워 보석으로서는 더 값어치가 있다. 주로 반지 같은 장신구로 사용되는데, 고가의 비취가 경옥에 포함된다.
옥은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됐다. 주로 장신구로 이용됐고, 색깔로 조정의 계위의 상·하를 정하기도 하고 장식과 의식을 위해 비취를 널리 사용하였으며, 사회계급의 신분을 구분하는 드리개와 악기인 옥경(玉磬), 약재 및 의료용구 등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기 시대부터 옥이 사용되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국 시대에는 상류층의 중요한 장신구로써 옥이 매우 애용되었는데, 이는 여러 고분에서 출토된 곱은옥, 구슬옥, 대롱옥 등 주옥류(珠玉類)와 진평왕의 옥허리띠 등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옥제품은 고려 시대에 와서 조각된 옥제 장식품의 형태로 발전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재료의 확보가 어렵고 왕족과 특수계층에 한해 지닐 수 있는 귀한 공예품이였기에 옥공예를 다루는 공인의 수를 국가에서 제한해 그 수가 극히 적었다.
옥은 가공에 있어서도 동공예 제조기술과는 판이하게 달라 정으로 쪼아 다듬어 만드는 것이 아닌 일일이 갈아 제작한다. 옥 제작은 전통적인 옥 제작 방법과 공구 등이 문헌을 통해 전하고 있진 않으나 보통 채색-디자인-절단-성형-세부조각-광택 등 6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각 공정에 따라 절단공구인 쇠톱, 구멍을 뚫는 활비비(활빙개), 연마공구인 갈이틀, 물레 등 다양한 공구들이 사용되는데, 세밀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많은 공구가 필요하다.
옥공예는 고가의 원석을 다루기 때문에 채석 및 밑그림 그리기 등 초기단계에서부터 정확한 예측이 필수적이며, 정교한 조각기능 뿐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이 요구된다. 옥장은 1996년 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로 지정됐으며, 장주원 선생을 기능보유자로 인정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장주원 선생은 금은세공일을 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세공일을 접할 수 있었다. 옥공예는 27세에 시작했으며, 스승도 없이 혼자 시작한 옥공예였기에 수시로 대만을 드나들며 연구하고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해 내고자 노력해왔다. 선생은 재래식 옥 제작방법을 고수하며 옥을 제작하고 있는데 특히 투각기법에 능해 향로, 주전자 등을 섬세하게 조각하고 연속된 고리를 깎는 기술이 뛰어나다. 현재는 지난 2005년에 목포에 개관한 옥공예전시관에서 사람들에게 옥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