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 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은 한쪽 발에 탈을 씌워서 노는 놀이로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경기도 안성지방의 남사당패가 행하던 꼭두각시놀음이 변형돼 주로 중부지방 일원에서 연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것이 광무대(光武臺)와 가설극장 또는 창극단(唱劇團) 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발탈놀이에는 탈꾼, 어릿광대, 여자역 등 세 사람이 등장한다. 발탈의 주역인 탈꾼은 발바닥에 탈을 씌우고 대나무로 만든 팔을 옆으로 벌려 그 위에 저고리와 마고자를 입히고, 조역인 어릿광대는 흰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부채를 들며, 여자역은 노랑저고리에 빨간치마를 입는다. 탈판의 구조는 검은 포장으로 가로 약 2m, 세로 약 1m 정도의 포장막을 4각으로 짜서 탈꾼이 그 속에 누워 발만 포장 앞으로 내놓는다. 탈꾼은 발의 움직임과 손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해 노래와 춤, 재담 등을 하고 포장막 밖에서는 어릿광대가 탈꾼을 상대해 주고, 무대 양옆에서 피리, 젓대, 해금, 북, 장구 등 삼현육각이 반주를 한다.

 

 발탈놀이는 줄인형극과 장대인형극의 조정형식을 갖춘 인형극적 성격과 함께 가면극으로서의 성격도 가미돼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중간 형태의 민속극이다. 동작을 포함한 춤과 노래, 그리고 재담으로 이뤄지는 가무극적 특징도 가지고 있다. 또한 반등신의 인형 배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말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인간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도 발탈이 갖는 특징이다. 발탈은 탈을 이용하면서도 가면극과 다르고, 인형 연행 방식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인형극과는 변별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발에 탈을 씌우고 놀리는 방식은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발탈만의 연행방식이다. 초기 발탈에서는 허수아비 모양으로 만든 인형의 머리 부분을 탈꾼의 발바닥에 씌우고 팔은 노끈으로 연결해 당기거나 놓으면서 조종했다고 한다. 이것이 팔꿈치와 어깨 두 곳에 노끈을 연결시켜 팔이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발전했고, 종이탈을 발에 씌워 팔꿈치와 팔목 두 곳에 실패를 장치하고 그 구멍에다 노끈을 연결해 팔이 이중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도 발전했다.

 

 광무대 시절에 유행한 발탈은 직접 손에 한삼을 끼고 춤을 추면서 연희를 하는 것이었는데, 주로 박춘재 선생이 이런 방식으로 공연했다. 남형우 선생은 양팔 끝에 노끈을 연결시켜 위로 올린 것을 대나무에 연결시키고 그 대나무를 양손으로 조종하면서 발탈놀이를 했다. 이동안 선생은 박춘재 선생과 남형우 선생이 하던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했다.

 

초기 발탈은 남사당패에서 비롯된 김덕순·조갑철·박춘재·오명선 선생 등을 기준으로 김덕순·조갑철·박춘재계의 발탈은 이동안 선생으로 이어졌고, 오명선계 발탈은 남형우 선생으로 이어졌는데 남형우 선생이 작고하면서 맥이 끊겨버렸다. 이후 발탈이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로로 지정되면서 이동안 선생이 초대 발탈 예능보유자로 인정됐고, 이어 제자였던 박해일 선생, 조영숙 선생, 박정임 선생이 보유자로 인정됐으나, 박해일 선생이 작고하면서 현재 조영숙·박정임 선생이 발탈 예능 보유자로서 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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