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담양 창평 삼지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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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길>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은 5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통마을이다. 이 마을은 월봉산과 국수봉이 봉황이 날개를 펼쳐 감싸안은 듯한 지형으로 월봉천(月峰川), 운암천(雲岩川), 유천(柳川)이 마을 아래에 모인다고 하여 ‘삼지내(천)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흥고씨(長興高氏) 제봉 고경명(薺峰 高敬命, 1533~1592)의 작은아들 고인후(高因厚, 1561~1592)가 이곳에 터를 닦으면서 김씨, 이씨, 고씨가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 이 마을에는 담양 고재선 가옥(潭陽 高在宣 家屋, 전남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88-3, 전남민속문화재 제5호), 담양 고재환 가옥(潭陽 高在煥 家屋, 전남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15-14, 전남민속문화재 제37호), 창평 춘강 고정주 고택(昌平 春江 高鼎柱 古宅, 전남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15-35, 전남민속문화재 제42호) 등 장흥고씨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또한 3,600m에 달하는 구불구불한 담양 삼지천마을 옛 담장(潭陽 三支川마을 옛 담牆, 등록문화재 제265호)은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이 눈길을 끈다. 비교적 모나지 않은 화강석 계통의 둥근 돌을 사용해 돌과 흙을 번갈아 쌓아 줄눈이 생긴 담장과 막쌓기 형식을 지닌 이 돌담길은 자연스럽게 굽어진 마을 안길을 따라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고택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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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주전경>


 창평 춘강 고정주 고택을 찾아간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큰 스승 춘강 고정주(春崗 高鼎柱 1863~1933)는 아버지 고제두(高濟斗),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5세 무렵 큰아버지 고제승(高濟升)의 양자로 들어갔다. 1885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승문원 부정자(承文院 副正字)로 관직에 오른 춘강 선생은 홍문관 시독(弘文館 侍讀), 비서원랑선(秘書院郞), 규장각 직각(奎章閣 直閣)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乙巳條約)이 맺어지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 창평으로 낙향하였다. 창평으로 내려온 선생은 어릴 적에 수학하던 상월정(上月亭)에 영어를 가르치는 영학숙(英學塾)을 세우고 아들 고광준,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를 비롯해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백관수, 현준호 등에게 신학문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더 많은 공부를 하기위해 유학을 가거나 또 다른 뜻을 펼치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영학숙은 현 창평초등학교의 전신인 창흥의숙(昌興義塾)으로 발전시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일이고, 백성을 계몽하는 것이 국력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신념아래 신교육운동에 전념하였다.

 

 고택은 멀리서도 한 눈에 띤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쓸쓸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가 나란히 위치하고 그 뒤로 안채와 곡간채, 사당 등을 갖추고 있는 부농형 양반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건물의 뼈대가 굵고 간살이도 넓으며 구조 형식도 우수하다.

 1913년에 건립된 안채는 전라도에서 보기 드문 ‘?’자형의 남향 건물로 낮은 두벌대 기단 위에 건립했다. 정면 6칸을 중심으로 좌측은 2칸의 익랑이 돌출되어 있고, 우측은 누마루가 돌출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본채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고 좌측 익랑에는 쪽마루를 설치해 이동이 편리하도록 했다. ‘육효당’이라는 당호가 붙은 바깥사랑채는 4칸 규모로 전후면에 퇴가 있고, 전면과 한쪽 측면에 툇마루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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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환가옥>


 1925년에 건립된 담양 고재환 가옥은 넓고 잘 다듬어진 마을 안길을 가다 집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큼직한 곳간채가 나오는데, 맨 좌측 끝 1칸이 대문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벽돌 담장을 쌓아 대문에서 안채가 들어다 보이지 않게 했다. 넓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 사랑채, 삼칸채, 문간(곳간)채가 ‘ㅁ’자 형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전후좌우퇴의 규모로 동쪽으로부터 1칸 반의 부엌, 부엌 앞에 1칸의 부엌방, 2칸의 큰방, 그 뒤편에 2칸의 도장방, 2칸의 대청, 1칸의 건넌방의 순으로 배치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전후퇴의 규모로 가장 왼쪽에 곳간, 두 번째 칸은 상하방형식으로 나누어서 앞쪽은 부엌, 뒤쪽은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별채 형식을 가진 삼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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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선가옥>


 1933년에 건립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담양 고재선 가옥은 대문을 들어서면 각종 수목과 방지로 구성된 사랑마당이 펼쳐져 있고, 중문에서 안채로 출입할 때는 안채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ㄱ’자형으로 설계했다. 안마당 서쪽에는 안채와 직각으로 광채를 배치하고 안채 동북쪽에는 3칸의 식료창고를 두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내외담을 쌓아 공간을 구분했다.  

 안채는 ‘ㅡ’자형 정면 6칸 전후좌퇴(前後左退)건물로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좌측으로부터 작은방, 대청 2칸이 있고 그 다음에 2칸 큰방이며, 뒤툇칸은 좌우 옷방으로 되어 있고 다음칸은 부엌을 배치했다. 사랑채도 ‘ㅡ’자형 4칸 겹집으로 전퇴(前退)를 두고 좌측과 후면은 툇마루를 설치했다. 좌측부터 상하로 각 1칸짜리 방이 있으며, 맨 끝칸은 대청을 배치하였다. 5칸의 큼직한 광채는 1칸은 마루를 깔고 나머지는 흙바닥이다.

 

 창평 삼지내마을은 전통마을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슬로시티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치타슬로(Cittaslow) 국제연맹’으로부터 완도, 장흥, 하동, 예산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자연친화적이고 인간중심으로 살아가는 곳임을 인정받았다. 슬로푸드라 할 수 있는 전통 장류와 한과, 쌀엿이 전통조리법을 잘 보존하고 있고, 고택과 돌담길이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명인의 손맛이 담긴 창평 명물 쌀엿과 한과·된장·장아찌 등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슬로푸드를 체험할 수 있다. 외지인들을 위해 장아찌와 쌀엿 등 슬로푸드 만들기, 한옥에서 전통 수제차 맛보기, 감을 이용한 천연 염색 등 전통 체험행사가 마을 곳곳에서 열리고,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특산품을 판매하는 ‘슬로시티 달팽이 시장’도 매월 두 번째 토요일마다 열린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돌담길을 따라 느릿느릿 시간여행 하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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