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조선 선비들을 위한 노래 ‘가사’

우리나라의 전통 성악 중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노래하는 가곡·가사·시조를 정가(正歌)라고 한다. 정가는 주로 사대부와 선비 등의 계층에서 인격 수양을 위해서 불렀던 노래로 음악적인 요소나 가창 방식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정가의 하나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歌詞)는 가사체(歌辭體, 산문에 가까운 문체)의 긴 사설(글)을 일정한 선율과 장단의 틀에 넣어서 노래하는 장편가요이다.
가사는 정확하게 언제 발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고금가곡(古今歌曲)》에 4곡, 《청구영언(靑丘永言)》에 9곡,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에 5곡, 《가곡원류(歌曲源流)》등의 기록으로 볼 때 조선 영조 이후부터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곡은 ‘춘면곡(春眠曲)’ ‘백구사(白鷗詞)’ ‘황계사(黃鷄詞)’ ‘죽지사(竹枝詞)’ ‘양양가(襄陽歌)’ ‘어부사(漁父詞)’ ‘길군악(노요곡, 路謠曲)’ ‘상사별곡(相思別曲)’ ‘권주가(勸酒歌)’ ‘수양산가(首陽山歌)’ ‘매화타령(梅花打令)’ 등 12가사이다.
가사는 노래 양식이 가곡만큼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시조보다는 전문적인 발성과 기교를 가진 음악으로 가곡과 시조가 고정된 선율에 다양한 사설을 얹어 부르는 것과는 달리 가사의 사설은 매우 길면서 일정하지 않고 창법상 여러 가지 특징과 음을 배열하는 방법이 명확하지 않아 곡마다 그 가사에 맞는 곡조로 짜인 것이 특징이다.
가사의 곡조를 담은 옛날 거문고 악보인 《삼죽금보(三竹琴譜)》에 ‘상사별곡’ ‘춘면곡’ ‘길군악’ ‘매화곡’ ‘황계곡’ ‘권주가’ 등 6곡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가사도 가곡처럼 거문고 등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사는 사설에 따라 가락이 조금씩 다르고 조바꿈이나 반복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가사의 장단은 크게 5박과 6박의 두 가지이다. 5박 장단 가사는 ‘상사별곡’ ‘처사가’ ‘양양가’ 등 3곡이며, 6박 장단의 가사는 ‘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어부사’ ‘길군악’ ‘수양산가’ ‘매화타령’ ‘춘면곡’ 등 8곡이다. ‘권주가’ 만은 유일하게 일정한 장단이 없이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장단으로 부른다.

< 이양교 선생 >
현행 12가사의 전통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하규일·임기준 선생이 아악생들에게 12가사를 가르치면서 전승되었다. 가곡계의 거성으로 불리는 하규일 선생은 1926년부터 1937년 타계할 때까지 이왕직아악부에서 가곡·가사·시조를 전수했다. 선생은 나머지는 급이 낮다는 이유로 의식적으로 ‘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춘면곡’ ‘어부사’ ‘길군악’ ‘권주가’ 등 8곡만 전수했으며, 나머지 4곡은 임기준 선생이 전수했다.
1970년 11월 가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던 장사훈 선생에 의해 조사가 이뤄졌고, 1971년 1월 8일 ‘가사’가 무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면서 하규일·임기준 선생에게 직접 사사하고 이를 계승한 이주환 선생이 초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됐다. 1975년 이주환 선생의 제자 이양교 선생과 정경태 선생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됐고, 2003년 정경태 선생이 타계하면서 현재는 이양교 선생에 의해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조선 선비들을 위한 노래 ‘가사’
우리나라의 전통 성악 중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노래하는 가곡·가사·시조를 정가(正歌)라고 한다. 정가는 주로 사대부와 선비 등의 계층에서 인격 수양을 위해서 불렀던 노래로 음악적인 요소나 가창 방식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정가의 하나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歌詞)는 가사체(歌辭體, 산문에 가까운 문체)의 긴 사설(글)을 일정한 선율과 장단의 틀에 넣어서 노래하는 장편가요이다.
가사는 정확하게 언제 발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고금가곡(古今歌曲)》에 4곡, 《청구영언(靑丘永言)》에 9곡,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에 5곡, 《가곡원류(歌曲源流)》등의 기록으로 볼 때 조선 영조 이후부터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곡은 ‘춘면곡(春眠曲)’ ‘백구사(白鷗詞)’ ‘황계사(黃鷄詞)’ ‘죽지사(竹枝詞)’ ‘양양가(襄陽歌)’ ‘어부사(漁父詞)’ ‘길군악(노요곡, 路謠曲)’ ‘상사별곡(相思別曲)’ ‘권주가(勸酒歌)’ ‘수양산가(首陽山歌)’ ‘매화타령(梅花打令)’ 등 12가사이다.
가사는 노래 양식이 가곡만큼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시조보다는 전문적인 발성과 기교를 가진 음악으로 가곡과 시조가 고정된 선율에 다양한 사설을 얹어 부르는 것과는 달리 가사의 사설은 매우 길면서 일정하지 않고 창법상 여러 가지 특징과 음을 배열하는 방법이 명확하지 않아 곡마다 그 가사에 맞는 곡조로 짜인 것이 특징이다.
가사의 곡조를 담은 옛날 거문고 악보인 《삼죽금보(三竹琴譜)》에 ‘상사별곡’ ‘춘면곡’ ‘길군악’ ‘매화곡’ ‘황계곡’ ‘권주가’ 등 6곡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가사도 가곡처럼 거문고 등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사는 사설에 따라 가락이 조금씩 다르고 조바꿈이나 반복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가사의 장단은 크게 5박과 6박의 두 가지이다. 5박 장단 가사는 ‘상사별곡’ ‘처사가’ ‘양양가’ 등 3곡이며, 6박 장단의 가사는 ‘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어부사’ ‘길군악’ ‘수양산가’ ‘매화타령’ ‘춘면곡’ 등 8곡이다. ‘권주가’ 만은 유일하게 일정한 장단이 없이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장단으로 부른다.
< 이양교 선생 >
현행 12가사의 전통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하규일·임기준 선생이 아악생들에게 12가사를 가르치면서 전승되었다. 가곡계의 거성으로 불리는 하규일 선생은 1926년부터 1937년 타계할 때까지 이왕직아악부에서 가곡·가사·시조를 전수했다. 선생은 나머지는 급이 낮다는 이유로 의식적으로 ‘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춘면곡’ ‘어부사’ ‘길군악’ ‘권주가’ 등 8곡만 전수했으며, 나머지 4곡은 임기준 선생이 전수했다.
1970년 11월 가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던 장사훈 선생에 의해 조사가 이뤄졌고, 1971년 1월 8일 ‘가사’가 무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면서 하규일·임기준 선생에게 직접 사사하고 이를 계승한 이주환 선생이 초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됐다. 1975년 이주환 선생의 제자 이양교 선생과 정경태 선생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됐고, 2003년 정경태 선생이 타계하면서 현재는 이양교 선생에 의해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