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경북 의성(義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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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꽃 >
어느덧 꽃샘추위는 물러가고 산수유, 벚꽃을 시작으로 서로 경쟁이나 하듯 꽃망울을 터뜨린 봄꽃은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다. 가야할 곳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경북 의성으로 간다. 산과 들을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축제는 끝나고, 달콤하고 향긋한 향을 품은 하얀 사과꽃 세상으로 변신 중이다.
의성은 ‘의성 마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마늘 못지않게 여기 저기 숨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미 2천년 전 고대국가 조문국이 존재했던 오랜 역사와 금봉자연휴양림과 빙계계곡 등 아름다운 풍광이 남아 있고, 한반도 최초 사화산인 금성산에서 게르마늄 온천수가 흐르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의성 (5).JPG
< 고운사 >
등운산(해발 524m) 자락 연꽃이 반쯤 핀 부용반개(芙蓉半開) 형상을 한 터에 천년고찰 고운사(孤雲寺)가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다. 구불구불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난 길이 편안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681)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처음 설립해 ‘고운사(高雲寺)’라 했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이 가운루(駕雲樓, 경북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해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운주와 천우스님이 2차례에 걸쳐 절을 확장해 지었으며 임진왜란(1592)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의 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조선 영조 때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보관하던 유교 전각인 연수전(延壽殿, 경북문화재자료 제444호)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다른 전각과는 확연히 차이가 느껴지는 이 건물은 숭유억불시대에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 사찰 내에 배치되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높이 79cm로 그리 크지 않은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고 전체적인 모습이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약사전, 나한전 등 많은 전각들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유교와 불교ㆍ도교의 문화가 서로 포용하며 함께 어우러진 고운사의 전각을 돌아보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일 듯.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義城 塔里理 五層石塔, 국보 제77호)을 만나기 위해 금성면 탑리로 들어선다. 찾아가는 길이 조금은 복잡하다. 아! 공사 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가설 덧집으로 가려져 있다. 그저 가져온 자료로 확인할 수밖에. 작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높이는 약 9.6m, 기단 넓이 약 4.5m이며 단층인 기단부(基壇部)는 14개의 지대석을 바닥에 깐 뒤, 네 면에는 2개의 안기둥인 탱주(?柱)와 귀기둥인 우주(隅柱) 모두를 각각 낱개의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초층 옥신(屋身)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초층 옥신석은 각 면마다 우주를 나타내었고, 남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근사하게 다시 태어날 모습을 기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은은한 꽃향기로 가득한 이곳에서 진짜 봄을 만끽한다. 눈으로, 가슴으로 가득 담은 모습에 한동안 행복하리라.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경북 의성(義城)
의성 (4).JPG
< 사과꽃 >
어느덧 꽃샘추위는 물러가고 산수유, 벚꽃을 시작으로 서로 경쟁이나 하듯 꽃망울을 터뜨린 봄꽃은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다. 가야할 곳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경북 의성으로 간다. 산과 들을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축제는 끝나고, 달콤하고 향긋한 향을 품은 하얀 사과꽃 세상으로 변신 중이다.
의성은 ‘의성 마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마늘 못지않게 여기 저기 숨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미 2천년 전 고대국가 조문국이 존재했던 오랜 역사와 금봉자연휴양림과 빙계계곡 등 아름다운 풍광이 남아 있고, 한반도 최초 사화산인 금성산에서 게르마늄 온천수가 흐르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의성 (5).JPG
< 고운사 >
등운산(해발 524m) 자락 연꽃이 반쯤 핀 부용반개(芙蓉半開) 형상을 한 터에 천년고찰 고운사(孤雲寺)가 아담하게 들어앉아 있다. 구불구불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난 길이 편안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681)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처음 설립해 ‘고운사(高雲寺)’라 했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이 가운루(駕雲樓, 경북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해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운주와 천우스님이 2차례에 걸쳐 절을 확장해 지었으며 임진왜란(1592)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의 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조선 영조 때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보관하던 유교 전각인 연수전(延壽殿, 경북문화재자료 제444호)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다른 전각과는 확연히 차이가 느껴지는 이 건물은 숭유억불시대에 왕실과 관련된 건물이 사찰 내에 배치되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높이 79cm로 그리 크지 않은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은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고 전체적인 모습이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약사전, 나한전 등 많은 전각들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유교와 불교ㆍ도교의 문화가 서로 포용하며 함께 어우러진 고운사의 전각을 돌아보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일 듯.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義城 塔里理 五層石塔, 국보 제77호)을 만나기 위해 금성면 탑리로 들어선다. 찾아가는 길이 조금은 복잡하다. 아! 공사 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가설 덧집으로 가려져 있다. 그저 가져온 자료로 확인할 수밖에. 작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높이는 약 9.6m, 기단 넓이 약 4.5m이며 단층인 기단부(基壇部)는 14개의 지대석을 바닥에 깐 뒤, 네 면에는 2개의 안기둥인 탱주(?柱)와 귀기둥인 우주(隅柱) 모두를 각각 낱개의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초층 옥신(屋身)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초층 옥신석은 각 면마다 우주를 나타내었고, 남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근사하게 다시 태어날 모습을 기대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은은한 꽃향기로 가득한 이곳에서 진짜 봄을 만끽한다. 눈으로, 가슴으로 가득 담은 모습에 한동안 행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