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는 부산 남구 용호동에 소재한 바위섬들로 1972년 6월 26일 지방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된 이후 해변에서 나란히 뻗어 있는 바위섬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해안 도서경관의 가치와 지질학, 생물학, 환경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0월 1일에 명승 제2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부산 오륙도는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예로부터 시인들의 제영대상이었으며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유행가에 등장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부산의 명소로서 상징성이 높은 아름다운 명승지이다. 오륙도 앞의 항로는 신라 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을 하기 위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들어서는 주요 해상 관문의 하나로 1876년 쓰여진 일도기유에는 오륙도를 지나 먼 곳에 대마도가 어렴풋이 보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오륙도를 기점으로 동해와 남해가 구분되는 등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라 하겠다.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마르락 하메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므 섬이
안개가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가
오늘은 빗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여늬 분도 저 섬을 해다 못해
해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위의 시는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 선생이 오륙도를 읊은 시이다. 오륙도는 보기에 따라 섬이 5개 또는 6개로 보인다는 신비감을 간직한 곳으로 오륙도라 이름지어진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오륙도라는 이름은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東萊府誌 山川條)에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하고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五六島在絶影島東 峯巒奇古列之海中 自東視之則爲六峯 自西視之則爲五峯 故名之 以此)”라는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오륙도라는 통칭과 함께 6개의 섬이 표기되어 있다. 각각의 작은 섬들에 대한 명칭은 지도나 문서상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1996년 해운항만청(현재 해양수산청)에서 북안 육지부인 승두말로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섬은 방패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방패섬’, 그 다음은 섬 정상에 소나무가 많아 이름한 ‘솔섬’, 섬의 형태가 수리와 같은 ‘수리섬’, 송곳 모양의 ‘송곳섬’, 섬 하부에 큰 동굴이 있는데서 유래한 ‘굴섬’, 정상부의 평평한 지형이 마치 밭과 같다 하여 ‘밭섬’으로 명명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매일경제 1996.5.30. 기사). 밭섬은 정상부에 등대가 세워진 이후에는 등대섬으로 불리고 있으며 6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상주하는 유인도이다.
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에는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바다 속에 벌여 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약 120,000년 전에는 섬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였으나 오랜 시간 거센 파도와 비바람에 침식되어 현재에는 방패성,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의 순서로 늘어서 있다. 이같은 파식 현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각 섬마다 수직에 가까운 해안절벽과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파식대로 구성된 전형적인 암석해안으로 기이하고 다양한 해양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각양각색의 해식동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굴섬은 섬 안의 굴이 엄마의 뱃속과 같다고 하여 정월대보름이 되면 이곳에 지성을 드리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오륙도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로 예로부터 이 섬을 지나는 선인(船人)들은 공양미를 던져 해신을 위무(慰撫)했다고 하는데 1881년 일사집략에서도 오륙도 앞바다에 풍우가 갑자기 일어나 파도가 자못 험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등 섬 근처의 조류가 너무 빨라 뱃길로서 험한 곳이라 생긴 관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기후적 특성은 해풍과 염분에 강한 식물이 주를 이루는 요인으로 현재까지 약 50여종이 보고되고 있다. 곰솔, 보리밥나무, 돌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돈나무, 다정큼나무 등의 수목과 해국, 도깨비고비, 갯기름나물, 갯고들빼기, 갯장구채 등의 초화류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오륙도 홈페이지). 또한 오륙도는 가마우지, 괭이갈매기 등 10여종 조류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륙도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라온 동식물들, 그리고 짙푸른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륙도에서 보이는 일출은 부산의 10경으로 꼽힐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륙도를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이기대 해안산책로에 조성된 스카이워크를 따라 오륙도와 광활하게 펼쳐진 해안을 감상하거나 오륙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에서 오륙도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오륙도 홈페이지
매일경제 1996년 5월 30일 기사
문화재청(2007)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고서
오륙도는 부산 남구 용호동에 소재한 바위섬들로 1972년 6월 26일 지방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된 이후 해변에서 나란히 뻗어 있는 바위섬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해안 도서경관의 가치와 지질학, 생물학, 환경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0월 1일에 명승 제2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부산 오륙도는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예로부터 시인들의 제영대상이었으며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유행가에 등장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부산의 명소로서 상징성이 높은 아름다운 명승지이다. 오륙도 앞의 항로는 신라 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을 하기 위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들어서는 주요 해상 관문의 하나로 1876년 쓰여진 일도기유에는 오륙도를 지나 먼 곳에 대마도가 어렴풋이 보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오륙도를 기점으로 동해와 남해가 구분되는 등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라 하겠다.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마르락 하메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므 섬이
안개가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가
오늘은 빗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여늬 분도 저 섬을 해다 못해
해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위의 시는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 선생이 오륙도를 읊은 시이다. 오륙도는 보기에 따라 섬이 5개 또는 6개로 보인다는 신비감을 간직한 곳으로 오륙도라 이름지어진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오륙도라는 이름은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東萊府誌 山川條)에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하고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五六島在絶影島東 峯巒奇古列之海中 自東視之則爲六峯 自西視之則爲五峯 故名之 以此)”라는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오륙도라는 통칭과 함께 6개의 섬이 표기되어 있다. 각각의 작은 섬들에 대한 명칭은 지도나 문서상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1996년 해운항만청(현재 해양수산청)에서 북안 육지부인 승두말로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섬은 방패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방패섬’, 그 다음은 섬 정상에 소나무가 많아 이름한 ‘솔섬’, 섬의 형태가 수리와 같은 ‘수리섬’, 송곳 모양의 ‘송곳섬’, 섬 하부에 큰 동굴이 있는데서 유래한 ‘굴섬’, 정상부의 평평한 지형이 마치 밭과 같다 하여 ‘밭섬’으로 명명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매일경제 1996.5.30. 기사). 밭섬은 정상부에 등대가 세워진 이후에는 등대섬으로 불리고 있으며 6개의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상주하는 유인도이다.
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에는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바다 속에 벌여 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약 120,000년 전에는 섬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반도였으나 오랜 시간 거센 파도와 비바람에 침식되어 현재에는 방패성,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의 순서로 늘어서 있다. 이같은 파식 현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각 섬마다 수직에 가까운 해안절벽과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파식대로 구성된 전형적인 암석해안으로 기이하고 다양한 해양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각양각색의 해식동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굴섬은 섬 안의 굴이 엄마의 뱃속과 같다고 하여 정월대보름이 되면 이곳에 지성을 드리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오륙도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로 예로부터 이 섬을 지나는 선인(船人)들은 공양미를 던져 해신을 위무(慰撫)했다고 하는데 1881년 일사집략에서도 오륙도 앞바다에 풍우가 갑자기 일어나 파도가 자못 험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등 섬 근처의 조류가 너무 빨라 뱃길로서 험한 곳이라 생긴 관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기후적 특성은 해풍과 염분에 강한 식물이 주를 이루는 요인으로 현재까지 약 50여종이 보고되고 있다. 곰솔, 보리밥나무, 돌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돈나무, 다정큼나무 등의 수목과 해국, 도깨비고비, 갯기름나물, 갯고들빼기, 갯장구채 등의 초화류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오륙도 홈페이지). 또한 오륙도는 가마우지, 괭이갈매기 등 10여종 조류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륙도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라온 동식물들, 그리고 짙푸른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륙도에서 보이는 일출은 부산의 10경으로 꼽힐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륙도를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이기대 해안산책로에 조성된 스카이워크를 따라 오륙도와 광활하게 펼쳐진 해안을 감상하거나 오륙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에서 오륙도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오륙도 홈페이지
매일경제 1996년 5월 30일 기사
문화재청(2007)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