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명승 제29호 구룡령 옛길



우리나라는 산지가 발달되어 산맥을 중심으로 지역이 분할되고 또 인간의 정주공간이 터를 잡았다. 인간의 생산활동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연결망인 길을 오가는 여정에는 의례 산을 넘어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우리의 선조들이 사용하던 옛길은 주로 사람과 우마가 다니던 길로 굴곡이 심하고 자연의 조건에 맞추어 조성된 곳이다(김학범, 2012). 


<구룡령 옛길>


 조선 시대 대표적인 길들은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도 방향으로 가는 삼남대로, 한양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영남대로, 호남대로, 의주로, 관동로 등 수많은 노선이 있다. 이 중 구룡령 옛길(九龍嶺 옛길, 명승 제29호)은 양양군 서천 갈천리에서 남쪽의 백두대간을 거쳐 홍천으로 이어지며, 홍천 경계에까지의 길이가 약 4㎞에 이르는(문화재청, 2007) 옛길이다.


 


이 길은 과거의 옛길들이 신작로의 개설로 인해 사라진 반면, 백두대간의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그 원형이 수백 년 전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구룡령 고개 인근의 비포장도로가 구룡령으로 잘못 알려진 적도 있었다. 구룡령 옛길은 2006년도에 전체 길이 5㎞ 정도로 옛길 복원을 위해 총 10여 차례에 걸쳐 조상이 다녔던 길을 역사적 고증과 함께 갈고 닦아 복원했다고 한다. 이 길은 통일신라의 최치원과 의상대사도 이 길을 넘나들었다고 하며(정선지, 2007), 강원도 지방 영동과 영서를 잇는 통로이자 보부상들에게는 상품의 교역로였고, 이 일대의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를 보러가던 과거길로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역사 깊은 곳이기도 하다. 


 

길은 인생에도 비유하듯 먼저 간 사람의 경험과 문화가 깃들고 뒤 따르는 사람들은 그 흔적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구룡령(九龍嶺)이란 이름은 ‘동해의 아홉 마리 용이 영을 넘어가기 위해 고개를 오르다가 지쳐서 서면 갈천리 마을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고 있다(문화재청 홈페이지).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에 영이란 것은 등마루 산줄기가 조금 나지막하고 평평한 곳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산에 용을 대입한 것은 길흉화복 관련된다.   산세가 마치 아홉 마리 용이 뒤엉킨 형상을 빗대어 과거급제를 기원하던 소망의 길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는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길보다 구룡령 옛길을 선호하였다고 한다(문화재청, 2007).

이 길에는 독특한 지명이 전해져 오는데 바로 ‘반쟁이’이다. 반쟁이는 반정(半程)에서 나온 말로 구룡령 굽이의 절반 지점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반쟁이에서 쉬어가곤 했다고 한다. 길에 오른 후 첫 번째로 만나는 반쟁이는 묘반쟁이로 여기에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 양양과 홍천의 경계를 결정짓는 문제를 두고 두 고을의 수령이 묘안을 냈는데, 두 수령이 각 고을에서 같은 시각에 출발해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 때 양양의 한 청년이 수령을 등에 업고 빠르게 달려 구룡령을 넘고 지금의 홍천군 내면 명계리까지 달려가 홍천의 수령을 만났다. 고개 너머까지 양양의 땅이 되었으니 양양 수령은 무척 흡족해 했으나 죽을 힘을 다해 뛰었던 청년은 돌아오는 길에 결국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 청년의 공적을 기려 묘를 만든 것이 ‘묘반쟁이’라 전해진다(문화유산채널). 묘반쟁이를 지나 길을 더 오르면 솔반쟁이에 이르게 되는데 주변에 울창한 금강송이 우거져 있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실제로 1989년 경복궁의 복원 당시에 이곳의 30여 그루 노송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그 가치를 짐작할 만하다. 또 7부 능선에는 횟돌반쟁이가 있는데 횟돌은 과거 장례를 치를 때에 횟가루를 뿌리면 목관에 나무뿌리가 파고들지 않는다 하여 이곳에서 횟돌을  캐갔던 곳이라고 전한다.



한편 구룡령 정상에 오르면 양양 방향으로 방태산이, 홍천 방향으로는 오대산 자락이 펼쳐지는 등 백두대간의 빼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능선이 천리를 달리고 만리가 내다보이는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문화유산채널). 또 구룡령 옛길은 아픈 역사가 남겨진 곳이기도 하다. 구룡령 옛길은 일제강점기 당시 길이 약 0.8~2㎞의 철광굴 3개소와 삭도가 주변 길가에 남아 있어 일대 주민들이 강제 징집되었던 애환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구룡령 옛길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산림이 울창한 지역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나무와 하늘을 덮는 수림지가 길에 오르는 이로 하여금 고단한 여정을 잊게 해준다. 구룡령 옛길은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고 전하는데 오늘날의 등산로와 달리 자연스러운 숲길과 함께 이 길을 넘는 사람의 수고가 덜하도록 경사가 형성되어 있다.



구룡령 옛길은 단순히 지역과 지역을 잊는 지리적 기능 외에도 선조들의 생활상이 중첩된 문화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문화재보호법 상에도 옛길은 종교·교육·생활·위락 등과 관련된 경승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현재까지는 구룡령, 죽령과 함께 토끼비리, 문경새재 등의 옛길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앞으로 우리 조상들이 걸었던 옛길에 관한 다양한 자료의 수집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인용문헌

김학범(2012) 명사칼럼 바꾸미고개-구룡령 옛길. 문화유산채널

문화재청(2007)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고서 2006-2007 천연기념물 명승

정선지(2007) 구룡령 옛 길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강원도민일보

문화유산채널(2013) 굽이굽이 옛 이야기 서린 구룡령 옛길. 문화유산채널


이원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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