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명승 제31호 문경 토끼비리



우리나라의 옛길은 산악지형이 많다보니 웬만하면 급하지 않은 경사를 택해 고개를 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옛길 중 그리 녹록치 않은 위험구간이 있다. 이를 ‘벼루’라 부르는 데, 이는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일컫는다. ‘벼루’는 ‘비리’라는 사투리로 불리는 경우가 있고 명승으로 지정된 문경 토끼비리(聞慶 토끼비리, 명승 제31호)가 그 대표적 사례다. 


<문경 토끼비리>


 예부터 문경지역은 이름난 고개들이 많아 고갯길이 발달했고,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토끼비리는 석현성(石峴城) 진남문(鎭南門)에서 동쪽의 오정산과 영강이 만나 단애면을 이루는 산 경사면에 개설된 천도(遷道, 하천변의 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길)를 말하며, 다른 이름으로 토천(兎遷), 관갑천(串岬遷), 토잔(兎棧), 잔도(棧道) 등으로 불린다. 중국의 위험천만한 절벽에 인위적으로 매어놓은 놓은 잔도와는 다르게 비리는 좀 더 자연을 배려한 한국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영남대로 옛길의 가장 험난한 구간 토끼비리>


 토끼비리는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산천조에 ‘관갑천은 용연(龍淵, 길 아래 벼랑의 영강 강물)의 동쪽 벼랑이나 일명 토천이라고 한다. 돌을 파서 사다릿길을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거의 6~7리나 된다.  세상에 전하기를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쳐내려와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이와 같이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권신응의 <모경흥기첩>


 멀리서 이 방면을 보면 토끼의 옆모습 형상을 한 절벽이 있기도 하여 이름과 같아 신기하다. 조선 시대 권신응의 <모경흥기첩>에는 토끼비리를 지나는 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지 문경십경 중 하나로 봉생천 위 절벽에 사람들이 줄지어 이곳을 지나는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산수화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림의 구성을 위해서 그려지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 그림은 유독 토끼비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주제인 듯하다. 토끼비리의 절벽 위에서 멀리 바라다보는 풍경이 어찌 아름답지 않았을까마는 자칫 발을 헛딛을까 염려하여 앞만 보고 걸었을 옛 선인들을 생각하니 이런 그림이 나올 법도 하다.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도 <관갑잔도(串岬棧道)>라는 시(詩)에서 토끼비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屈曲羊膓路(굴곡양장로) 꼬불꼬불 양 창자 같은 길이여 

逶迤鳥道奇(위이조도기) 꾸불꾸불 오솔길 기이하기도 하여라

峯巒一一勝(봉만일일승) 봉우리마다 그 경치도 빼어나서 

遮莫馬行遲(차막마행지) 내 가는 길을 막아 더디게 하네 


<영남의 요충지였던 토끼비리>


 후삼국 시대 문경은 견훤과 왕건의 영토분쟁지로 1414년(태종14)에 조령로가 열리자 교통과 군사상의 중요성 때문에 영남의 ‘인후지지(咽喉之地)’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이 요충지를 장악하기 위하여 이곳에 삼국 시대 축성으로 추정되는 고모산성(姑母山城)이 위치하고, 고모성에서 토끼비리 입구까지 조선 시대 축성된 날개 모양의 석현성의 진남문이 연결되어 그 군사적 중요성을 확인해 준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왜병이 이곳에 매복이 있을 것으로 두려워하면서 수차례 정찰한 후 군사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춤을 추며 노래하고 지나갔다는 기록이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보일만큼 천혜의 요충지였다.

 토끼비리 벼랑길을 지나 석현성 진남문을 통과한 후 주막거리와 성황당, 느티나무가 있는 ‘돌고개’의 고갯마루가 나오는데 꿀떡을 파는 떡집이 있어 ‘꿀떡고개’라고도 하고 숨이 차올라 ‘꼴딱고개’라고도 했다고 한다.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이 꿀떡을 사 먹어야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문경 진남교반>


 이 지역은 현재 곡선형의 도로와 교각들이 교차하는 진남교반으로 유명한데 삼국시대 최대 산성인 고모산성(1,300m)과 고부산성, 석현성이 인접하고, 인근에는 6~7세기 삼국 시대 고분군이 있으며,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다양한 노변 경관의 유적이 모여 있다. 영조 39년(1763)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趙曮)이 지은 <해사일기(海槎日記)>에 이 지역을 지나던 상황이 실감나게 실려 있다.

 전 구간은 석현에서 견탄(犬灘)·불정원(佛井院)까지 약 2㎞이나, 이 가운데 석현에서 관갑원 고개에 이르는 약 600m 구간은 안부(鞍部), 난간, 축대 등을 보수 정비하여 옛길의 모습을 살려 놓았다. 주변에 문경시에서 레일바이크를 운영하기도 하여 즐길 만하다. 


문경시 마성면에서 고모산성으로 이르는 초입에는 성황당과 당나무인 느티나무 노거수가 노변에 있고, 주변에 흉고직경 30-50㎝ 정도의 소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고모산성에서 토천이 시작되는 진입로 좌우에는 대부분 신갈나무 등의 어린 2차림이 분포하고 흉고직경 10-20㎝ 정도의 벚나무, 산복사, 아까시나무, 단풍나무 등의 식재림이 나타난다. 토천의 좌우 산지는 경사가 매우 급하여 자라는 식물이 적고 만경류들이 주를 이룬다. 


<토천이 흐르는 토끼비리>


 토천 남측으로는 영강이 토천을 휘감듯 유유히 흐르며, 절벽과 강, 강 건너편 마을 경관의 전망은 토천에서 최고 조망 경관을 형성한다. 토끼비리는 영강 수면으로부터 10~20m 상부의 석회암 절벽을 깎아서 만든 길이며, 총연장 2㎞를 조금 넘는 이 잔도는 암벽을 깎아 노면을 평탄하게 만들었으며, 토석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축대를 설치하고, 가파른 벼랑에는 석회암과 역암을 절단(행인과 우마의 발로 인해 닳은 반들반들한 흔적이 잔존)하여 평탄하게 하였다. 길 가장자리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나무로 만든 난간을 설치하여 길을 넓혔으며 석회암맥 돌출부분에는 인공으로 암석안부(巖石鞍部)를 만들었다고 한다.


<안전휀스를 설치해 놓은 토끼비리>


 토끼비리는 지금은 안전휀스 등을 설치해 길에서 영강을 조망하기 한결 쉬워졌다. 그러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길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풍모를 잃지 않아야 더 정겹다. 우리 산하의 옛길들이 제 모습을 찾아 더 많은 명승으로 지정되기를 바래본다.



 

<참고문헌>

문화재청(2007) 2006-2007년 천연기념물·명승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고서

옛길 박물관(2014) 길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 옛길박물관, 대원사 서울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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