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명승이라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 이곳은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문화재위원회의 설치에 따라 1970년 6월 5일 최초의 명승지정이 의결되었다. 오대산국립공원이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명승지정이 이보다 훨씬 앞선 셈이다. 당시 문화재위원회 3분과(명승 및 천연기념물분과)위원장이었던 故이민재 교수는 우리나라 자연보호선언문 제정에 앞장선 자연보호운동의 선각자로 강원대학 총장을 지낸바 있고 식물생리학자이자 산악인이다.
문화재관리국은 명승지정을 위해 대한산악회에 보조금을 주어 명승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전국의 100여 곳의 대상지가 보고되었으며 명주 청학동의 소금강과, 평창 오대산, 거제 해금강, 정읍 내장산 및 장성 백양산 등 네 곳을 명승으로 지정하기로 심의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두 곳만 지정되었다. 같은 해 11월 23일 문공부 고시 126호로 명승 제1호가 정식으로 탄생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명승관련 법제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16년에 시작되었다. 일제는 1916년 4월 26일 고적조사위원을 임명하고 이들로 하여금 규칙제정을 준비하게 했으며 7월 4일 규칙제정과 함께 고적조사위원회 규정도 제정 공포했다. 이는 고적과 금석물, 기타 유물 및 명승지 등의 조사 및 보존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1933년 8월 9일 제령 제6호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반포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고적 및 명승 5건, 명승 및 천연기념물 2건 등이 지정되었으나 현재와 같은 개념의 명승문화재는 한건도 지정되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첫 번째 명승인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태백산맥의 동쪽에 위치하며 지정구역이 50,611,226㎡에 이르고 율곡 이이의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에 ‘청학산’으로 소개되고 경치가 흡사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고 한 것에 기인하여 소금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율곡의 ‘유청학산기’에는 ‘소금강’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옛 지명중에는 중국의 경승지를 본따 이의 정도를 축소하여 부르거나 우리나라 절경과 흡사한 곳을 비교하여 명명하는 것이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경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으며 중국과 비교해서는 사대주의라기보다 물아일체와 같이 자연을 벗하여 자신의 성정을 수양하였기에 당연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선비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소금강은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강릉터미널에서 이곳까지 약1시간 정도 소요되고 차편은 자주 있는 편이다.
이곳은 소금강계곡을 시작으로 하여 구룡폭포에서 노인봉으로 향하는 노선을 이루고 있는데 현재는 구룡폭포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구간 중 일부가 통제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백마봉이 경계를 이루고 서쪽의 노인봉, 동쪽경계를 이루는 천마봉, 남쪽에는 1,400m의 소황병산과 뒤편의 황병산이 명승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율곡의 ‘유청학산기’에 박대유가 이곳을 소개하기를 “연곡현(連谷縣) 서쪽에 오대산(五臺山)으로부터 백여 리를 뻗어 내려온 산이 있고 그 가운데 동학(洞壑)이 있어 매우 맑으며, 그 유심(幽深)한 곳에 청학(靑鶴)이 암봉(岩峯) 위에 깃들이고 있으니, 참으로 선경(仙境)이나 유람하는 사람이 이르지 않으므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계곡주변과 산지에 소나무, 굴참나무, 자작, 철쭉, 단풍 등 식생이 분포하고 좀고사리의 자생지이며 소금강의 물길은 오대산 청학산으로 불리는 노인봉(1,330m)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연곡천과 합쳐져 동해로 합류된다. 주로 편암, 편마암류, 화강암이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기이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벽단애가 병풍을 이루고 이곳에 뿌리를 간신히 의지한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가 감탄을 자아낸다. 암반사이를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리치는 폭포와 맑은 계곡도 쉬어 감직하다. 통일신라시대 마의태자와 관련된 아미산성과 구룡연못, 비봉폭포, 무릉계, 백마봉, 옥류동, 식당암(율곡은 이를 ‘비선암’으로 부름), 만물상, 선녀탕 등이 마치 산수화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할만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율곡이 ‘유청학산기’에 이곳의 감회를 밝히기를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石山)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석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냇물의 근원이 매우 먼데, 수세(水勢)가 거센 곳에 폭포를 이루어 맑은 하늘에 천둥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 듯하고 고인 곳에는 못이 되어 차가운 거울에 얼이 없는 듯한가 하면, 깊고 맑고 아름답고 푸르러 낙엽이 붙지 못하고 휘돌아 흐르는 구비마다 암석 모양이 천변만화하고 산그늘과 나무 그림자에 이내가 섞여 어스레하여 햇빛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변하지 않은 당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통행로에 데크가 잘 설치되어 간단한 복장이면 어려움이 없고 어린아이들도 걸을 면한 코스이다. 여름 휴가철이 놀만하고 계곡을 중심으로 각각 멋진 장관이 펼쳐지므로 그 포인트를 잘 찾아 사진 찍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이원호 학예연구사
오대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명승이라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 이곳은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문화재위원회의 설치에 따라 1970년 6월 5일 최초의 명승지정이 의결되었다. 오대산국립공원이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명승지정이 이보다 훨씬 앞선 셈이다. 당시 문화재위원회 3분과(명승 및 천연기념물분과)위원장이었던 故이민재 교수는 우리나라 자연보호선언문 제정에 앞장선 자연보호운동의 선각자로 강원대학 총장을 지낸바 있고 식물생리학자이자 산악인이다.
문화재관리국은 명승지정을 위해 대한산악회에 보조금을 주어 명승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전국의 100여 곳의 대상지가 보고되었으며 명주 청학동의 소금강과, 평창 오대산, 거제 해금강, 정읍 내장산 및 장성 백양산 등 네 곳을 명승으로 지정하기로 심의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두 곳만 지정되었다. 같은 해 11월 23일 문공부 고시 126호로 명승 제1호가 정식으로 탄생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명승관련 법제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16년에 시작되었다. 일제는 1916년 4월 26일 고적조사위원을 임명하고 이들로 하여금 규칙제정을 준비하게 했으며 7월 4일 규칙제정과 함께 고적조사위원회 규정도 제정 공포했다. 이는 고적과 금석물, 기타 유물 및 명승지 등의 조사 및 보존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1933년 8월 9일 제령 제6호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반포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고적 및 명승 5건, 명승 및 천연기념물 2건 등이 지정되었으나 현재와 같은 개념의 명승문화재는 한건도 지정되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첫 번째 명승인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태백산맥의 동쪽에 위치하며 지정구역이 50,611,226㎡에 이르고 율곡 이이의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에 ‘청학산’으로 소개되고 경치가 흡사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고 한 것에 기인하여 소금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율곡의 ‘유청학산기’에는 ‘소금강’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옛 지명중에는 중국의 경승지를 본따 이의 정도를 축소하여 부르거나 우리나라 절경과 흡사한 곳을 비교하여 명명하는 것이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경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으며 중국과 비교해서는 사대주의라기보다 물아일체와 같이 자연을 벗하여 자신의 성정을 수양하였기에 당연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선비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소금강은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강릉터미널에서 이곳까지 약1시간 정도 소요되고 차편은 자주 있는 편이다.
이곳은 소금강계곡을 시작으로 하여 구룡폭포에서 노인봉으로 향하는 노선을 이루고 있는데 현재는 구룡폭포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구간 중 일부가 통제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백마봉이 경계를 이루고 서쪽의 노인봉, 동쪽경계를 이루는 천마봉, 남쪽에는 1,400m의 소황병산과 뒤편의 황병산이 명승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율곡의 ‘유청학산기’에 박대유가 이곳을 소개하기를 “연곡현(連谷縣) 서쪽에 오대산(五臺山)으로부터 백여 리를 뻗어 내려온 산이 있고 그 가운데 동학(洞壑)이 있어 매우 맑으며, 그 유심(幽深)한 곳에 청학(靑鶴)이 암봉(岩峯) 위에 깃들이고 있으니, 참으로 선경(仙境)이나 유람하는 사람이 이르지 않으므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한다.
계곡주변과 산지에 소나무, 굴참나무, 자작, 철쭉, 단풍 등 식생이 분포하고 좀고사리의 자생지이며 소금강의 물길은 오대산 청학산으로 불리는 노인봉(1,330m)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연곡천과 합쳐져 동해로 합류된다. 주로 편암, 편마암류, 화강암이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기이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벽단애가 병풍을 이루고 이곳에 뿌리를 간신히 의지한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가 감탄을 자아낸다. 암반사이를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리치는 폭포와 맑은 계곡도 쉬어 감직하다. 통일신라시대 마의태자와 관련된 아미산성과 구룡연못, 비봉폭포, 무릉계, 백마봉, 옥류동, 식당암(율곡은 이를 ‘비선암’으로 부름), 만물상, 선녀탕 등이 마치 산수화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할만큼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율곡이 ‘유청학산기’에 이곳의 감회를 밝히기를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石山)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석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냇물의 근원이 매우 먼데, 수세(水勢)가 거센 곳에 폭포를 이루어 맑은 하늘에 천둥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 듯하고 고인 곳에는 못이 되어 차가운 거울에 얼이 없는 듯한가 하면, 깊고 맑고 아름답고 푸르러 낙엽이 붙지 못하고 휘돌아 흐르는 구비마다 암석 모양이 천변만화하고 산그늘과 나무 그림자에 이내가 섞여 어스레하여 햇빛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변하지 않은 당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통행로에 데크가 잘 설치되어 간단한 복장이면 어려움이 없고 어린아이들도 걸을 면한 코스이다. 여름 휴가철이 놀만하고 계곡을 중심으로 각각 멋진 장관이 펼쳐지므로 그 포인트를 잘 찾아 사진 찍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이원호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