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승]명승 제34호 윤선도가 발견한 이상세계, 보길도 윤선도 원림 (甫吉島 尹善道 園林)



보길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섬으로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약12km 떨어진 상록수가 우거지고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조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효종의 스승이기도 했던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1587∼1671)가 조성한 공간이 남아있으니 명승 제34호 보길도 윤선도 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이다.


<보길도 정면 해안>


 보길도는 타원형에 가까운 구조로 해발 200∼400m 산지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곳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지역에 속하며 윤선도 원림과 우암 송시열이 글을 쓴 바위 외에도 완도 예송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과 예송리 몽돌해수욕장 등 볼거리와 전복 최대 생산지로도 유명한 자연과 문화, 어느 하나 손색없이 잘 어우러진 명승지이다.


<동천석실에서 본 부용동 전경>


 고산 선생이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감동하여 머무르면서 이곳 원림조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인조 15년(1631) 51세 때부터 13년간 글과 마음을 다듬으며,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이루어 낸 곳이기도 하다. 특히 원림의 원형을 추측할 수 있는 고산 선생의 5대손 윤위의 《보길도지》와 고산 선생의 저작들을 모은 《고산유고》가 남아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고산 선생은 보길도 부용동에 있는 각각의 경처를 미리 답사하고 원림을 조성하였는데 후에 보길도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낙서재를 중심으로 한 정주공간 이외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소요하는 낭음계와 곡수당, 부용동의 최고 전망권을 지닌 동천석실, 정자와 물을 중심으로 한 세연정을 중심으로 권역을 이루며 개개의 장소성과 섬 하나가 원림으로써 기능을 하는 유기적 관계성을 함께 지니게 된다. 고산 선생은 이곳에 건물을 짓고 생활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물에 합당한 이름을 붙이는 등 자연과의 친화를 추구하였다. 혁희대, 미산, 소은병, 낭음계 등의 명명의 사례에서 그 내용을 살필 수 있다.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부용동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를 원림을 통해 표현했던 고산 선생은 스스로를 ‘부용조수(芙蓉釣叟)’라 칭했다 한다. 주변 사물과 경관을 주제로 한시를 지었으며, 이는 부용동을 선경으로 보고 그곳에 신선으로 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였다. 고산  선생은 보길도 원림을 자연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판단한 것으로 보여지며, 그 속에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연에 자신만의 장소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보길도 원림만의 정체성을 완성하였다. 물과 바위를 정원의 주요 구성요소로 연출하고 기존 수문체계 내에서 수원의 확보와 저류, 그리고 수류의 조절 등 기능적 측면에서 부황천의 높은 첨두유출량을 보완하는 기능적 역할을 병행한 점은 오늘날 생태계 순환원리 까지도 염두에 둔 원림공간의 사상적 기능적 완성을 보이는 뛰어난 부분이다.


<낙서재>


낙서재(樂書齋)

 낙서재 공간은 고산 선생이 거처하던 내침으로 보길도 부용동 원림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보길도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혈맥이 격자봉에서 세 번 꺾어져 내려오면서 소은병(小隱屛)이 있고 소은병이란 바위가 있고, 1637년 이 바위 밑에 초가로 집을 지었다가 그 뒤에 잡목을 베어 없애고 세 칸의 집을 짓고 낙서재라 했다. 낙서재는 사방으로 퇴를 달아 매우 컸다. 낙서재의 남쪽에 외침을 짓고 두 침소 사이에 동와와 서와를 지었다. 그리곤 늘 외침에 거처하면서 세상을 피해 산다는 뜻으로 ‘무민(無悶)’이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했다. 201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귀암’ 발굴로 인해 귀암-낙서재-소은병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축선상의 증거가 모두 확인되어 낙서재의 원형복원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세연정>


세연정(洗然亭)

 세연정은 계담, 정자, 대(臺)와 소나무, 동백나무를 비롯한 여러 수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으로 부용동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에서 이름한 것으로, 고산 선생은 세연정 지역을 ‘번화하고 청정하여 낭묘(廊廟, 재상)의 그릇이 될 만한 곳’이라 했다.
 

<세연정>


 세연정의 세연지는 보길도 주산 격자봉에서 낭음계로 흘러든 계곡물이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는 부황천의 본류에서 벗어난 지류에 조성된 것으로 인위적인 장식적 요소 보다는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원림의 구성요소로 활용하였다. 판석보는 다리의 기능을 겸한 과학적 수위조절의 대표작이며 세연정 서편에 위치한 거북이 형태의 바위 위에 가설된 비홍교는 세연정과의 주 출입동선을 이어주고 있다.


<세연정>


 비홍교 남쪽에는 혹약재연(或躍在淵) 등의 일곱 암석이 위치하고 잇는데 이 칠암은 자연적인 상태의 화강암으로 연못 속에 내버려둔 듯 흩어져 있으며 경관요소의 기능과 더불어 물의 흐름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정자 인근 동대와 서대는 서로 대칭된 석축으로 만든 대로 무대 역할을 한다. 세연정은 최근 복원사업을 통해 정원입구를 원래 위치로 바로 잡았으며 인근에 고산 관련 전시관을 열기도 했다.
 

<곡수당>


곡수당(曲水堂)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세워 ‘곡수당’이라 하였는데 보길도 원림유적 중에 가장 나중에 지어졌으며 복원 또한 가장 늦게 되었다. 곡수당 주변으로는 자연지형인 계곡부를 따라 수로가 형성되어 있으며 2개의 수로가 서재 앞에서 합류하여 곡수당을 지나 부황천 본류까지 흐른다.

 곡수당 일원은 하천을 기준으로 곡수당과 상연지 일원, 서재와 정자, 보(堡) 일원, 석정과 하연지 일원, 총 3개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형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석축을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지반의 안정성을 유지함으로써 곡수당을 비롯한 건물을 하천과 인접하게 배치 할 수 있었다. 또한 연지의 배치에 있어서도 각 영역별 조망요소 중 물과 관계가 깊고, 사용된 방지의 축이 직교축을 사용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곡수당 일원에 나타난 영역의 구성, 건물간 축의 설정과 냇물에 근접한 개별 건물의 배치수법, 적극적인 조망요소로써 연지와의 관계 등은 곡수당 일원에 내재된 조영의 맥락을 확인 할 수 있다.


<동천석실>


동천석실(洞天石室)

 동천석실의 공간구성은 현재, 2개의 건물과 1개의 연지가 지형지물과 어우러진 것으로 관조적 공간인 연지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낙서재 및 부용동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조망 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석폭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은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차와 관련된 공간으로 활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길도지》의 내용에서 동천석실을 조성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낙서재를 잡던 처음에 안산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가 한참 뒤에 남여를 타고 곧바로 석실로 향해가서 황무지를 개척했다. 기교하고 고괴한 석문, 석제, 석난, 석정, 석천, 석교, 석담 들은 모두가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이며 그 모양에 따라 이름 지어졌다. 이곳 석함 속에 한 칸 집을 짓고 명명하기를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 했다. 대체로 안산의 중간 봉우리 기슭에서 수십 보 올라가면 돌길이 구불구불 나 있고, 산허리에 이르면 갑자기 층계가 분명한 석제가 있는데, 마치 사람이 축조한 것과 같다. 그 안에는 두어 간 되는 반석이 있다. 가운데에는 오목하고 같은 돌이 놓여 있으며, 겉은 깎은 듯하다. 공은 이곳을 몹시 사랑하여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하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수시로 찾아와 놀았다. 이곳에 앉으면 온 골짜기가 내려다보이고, 격자봉과는 평면으로 마주하게 되며, 낙서재 건물이 환하게 눈앞에 펼쳐진다.”라고 동천석실에서 바라 본 부용동 일대의 모습을 설명하였다.

 

 보길도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함께 동양의 자연관과 성리학 사상이 흐르고 있는 고산 윤선도의 원림을 통해 자연과의 인간의 이상적 상생관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이며 보길도 경관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이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도록 계획한 윤선도의 뛰어난 재능 또한 그 가치를 높이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이원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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