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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역사의 거리 나주 영산포구
영산포구 (2).JPG
<영산포 등대와 황포돛배 나루터>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 맘 때쯤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증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가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나주를 찾아간다. 전라남도 담양 용추봉에서 발원한 115.5km 영산강은 전남 7개 시?군을 가로질러 흐르고 나주에 이르러서는 큰 강줄기를 형성해 영암을 지나 목포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호남의 젖줄이다. 영산강이 휘감아 돌며 드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 나주는 ‘천년 고도’ ‘작은 한양’이라 불릴 정도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먹거리와 영산강을 통한 물자교환이 활발해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국물 맛이 빼어난 ‘나주곰탕’, 자연 발효되어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영산포 홍어’, 갯물과 민물이 만나 맛이 뛰어난 ‘구진포 장어’ 등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영산포구를 들어선다.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홍어 특유의 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삼한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호남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영산포는 세곡창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포구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나주평야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수탈기지가 되어 일본식 대저택과 은행, 정미소, 경찰분소 등이 자리 잡았고, 대형화물선이 드나들 정도로 번성했던 항구역할을 했다. 그러나 1978년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면서 뱃길이 끊어지고, 흑산도 홍어마저 공급이 끊겨 영산포구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현재 영산포구는 활기를 점점 되찾아가고 있다.
<영산포구 홍어거리>
홍어는 흑산도가 주산지이지만 홍어 맛의 본고장은 역시 영산포라 할 수 있다.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이 잦아지자 조정에서는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왜구를 피해 섬사람들을 뭍으로 들어와 살도록 했다. 흑산도에 살던 사람들이 목포를 거쳐 영산포까지 바람을 이용한 돛을 달고 올 때 10여일이 걸리는데 이때 싣고 온 홍어가 자연스럽게 발효되어 알싸하게 코끝까지 톡 쏘는 최고의 맛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임금님께 진상품으로 올리기도 한 영산포 홍어는 별미 중에 별미다. 처음엔 특유의 냄새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 맛을 보게 되면 그 맛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최근에는 영산포구 영산교를 중심으로 홍어거리가 조성되어 즐비하게 들어선 가게들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주변에 있던 일본식 가옥과 관광서는 카페와 갤러리, 전망대 등으로 꾸며 정겨운 모습을 간직한 골목으로 운치 있게 변신하고 있다. 또한 영산강 나루터에는 과거 흑산도 홍어를 비롯해 소금, 미역 곡물 등을 영산포까지 실어 나르던 황포돛배를 복원해 다시 띄워 옛 정취를 되살려 놓았다. 영산포 나루터로 가는 길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영산포 등대(등록문화재 제129호)가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내륙으로 들어오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과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1915년에 세운 이 등대는 우리나라 내륙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1989년까지 수위 관측시설로 사용되었다.
나루터로 내려가 황포돛배에 몸을 싣는다. 뱃머리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푸른 물줄기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내가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는지, 강줄기가 내게 다가오는지. 강바람에 한껏 부푼 황포돛이 마음까지 들뜨게 만든다. 그저 좋다는 말밖에, 바로 이런 것이 일상 탈출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