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길로 손꼽히는 문경새재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고개로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다.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던 이곳에 임진왜란 후 3개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문져새재 제1관문
문경새재 3개 관문 중 가장 먼저 만나는 주흘관(主屹關), 영남제1관(嶺南第1關)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세웠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은 영남제2관(嶺南第2關)으로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그 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길이 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좌우의 성벽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문겨새재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은 영남제3관(嶺南第3關)으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500여 년 동안 영남지역에서 한양을 향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문경새재는 지금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유적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길로 손꼽히는 문경새재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고개로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다.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던 이곳에 임진왜란 후 3개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문져새재 제1관문
문경새재 3개 관문 중 가장 먼저 만나는 주흘관(主屹關), 영남제1관(嶺南第1關)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세웠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은 영남제2관(嶺南第2關)으로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그 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길이 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좌우의 성벽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문겨새재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은 영남제3관(嶺南第3關)으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500여 년 동안 영남지역에서 한양을 향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문경새재는 지금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유적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