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화려하게 물들였던 시간도 잠시 잠깐, 이미 초겨울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짧아진 낮의 길이를 이유삼아 가까운 곳으로. 언제나 그렇듯 목적지로 항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땅이 넓고 기름진 예당평야가 펼쳐져 있는 충남 예산(禮山). 의좋은 형제의 고장이자 예의와 충절의 고장인 예산은 내포신도시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각광받는 전원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내포(內浦)’는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충청도에서 내포지방(서산, 태안, 당진, 예산, 홍성 등)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예당저수지.JPG
< 예당저수지 >
가을빛이 가득 내려앉은 예당저수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가며 펼쳐져 있다. 바다라고 하기엔 너무 잔잔하고, 저수지라 하기엔 너무나 드넓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저수지 위로 한 무리의 청둥오리 떼가 한가로이 배회하고 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하는 저수지와 어우러진 모습들. 예당저수지는 아쉬운 듯 연신 수면 위로 그림자를 찍어내고 있다. 1962년에 건설된 국내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저수지는 예산군과 당진군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해 준다고 해 ‘예산군’과 ‘당진군’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지었고, 4개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낚시를 할 수 있는 예당저수지는 붕어, 잉어, 뱀장어 등이 많이 잡히는 중부권의 최고의 낚시터로 알려져 있고, 또한 1986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낚시뿐만 아니라 조각공원, 캠핑장,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휴양지로도 인기가 높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 가수 송춘희가 부른 ‘수덕사의 여승’으로 인해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수덕사(修德寺)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영향으로 수덕사가 비구니 절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아마 대웅전 뒤에 있는 견성암(見性庵)과 절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견성암은 일엽 스님이 출가해 40년 넘게 구도의 길을 걸었던 곳이자 비구니들의 선방이고, 수덕여관은 일엽 스님과 친구 사이기도 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이 수덕여관에서 3년간 머물며 그림을 그리던 곳이다.

수덕사.JPG
< 수덕사 >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덕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고승 지명(知命)이 처음 세우고 원효대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숭제(崇濟) 스님이 창건하고 나옹선사가 중수했다고도 전해진다. 근세에 들어서는 우리 불교를 지켜온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이 머물며 많은 후학을 배출했고, 우리나라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어 많은 수도승이 정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국보 제49호)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 시대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그밖에도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3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381호), 수덕사 칠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제181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내려오는 길,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도로 위를 뒹군다. 계절은 점점 깊어져 간다. 멀지않은 곳이라도 좋다. 일상에 지친 마음 잠시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떠남’이란 단어 앞에서 이미 홀가분해졌을 테니.
전국을 화려하게 물들였던 시간도 잠시 잠깐, 이미 초겨울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짧아진 낮의 길이를 이유삼아 가까운 곳으로. 언제나 그렇듯 목적지로 항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땅이 넓고 기름진 예당평야가 펼쳐져 있는 충남 예산(禮山). 의좋은 형제의 고장이자 예의와 충절의 고장인 예산은 내포신도시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각광받는 전원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내포(內浦)’는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충청도에서 내포지방(서산, 태안, 당진, 예산, 홍성 등)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예당저수지.JPG
< 예당저수지 >
가을빛이 가득 내려앉은 예당저수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가며 펼쳐져 있다. 바다라고 하기엔 너무 잔잔하고, 저수지라 하기엔 너무나 드넓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저수지 위로 한 무리의 청둥오리 떼가 한가로이 배회하고 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하는 저수지와 어우러진 모습들. 예당저수지는 아쉬운 듯 연신 수면 위로 그림자를 찍어내고 있다. 1962년에 건설된 국내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저수지는 예산군과 당진군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해 준다고 해 ‘예산군’과 ‘당진군’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지었고, 4개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낚시를 할 수 있는 예당저수지는 붕어, 잉어, 뱀장어 등이 많이 잡히는 중부권의 최고의 낚시터로 알려져 있고, 또한 1986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낚시뿐만 아니라 조각공원, 캠핑장,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휴양지로도 인기가 높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 가수 송춘희가 부른 ‘수덕사의 여승’으로 인해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수덕사(修德寺)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영향으로 수덕사가 비구니 절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아마 대웅전 뒤에 있는 견성암(見性庵)과 절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견성암은 일엽 스님이 출가해 40년 넘게 구도의 길을 걸었던 곳이자 비구니들의 선방이고, 수덕여관은 일엽 스님과 친구 사이기도 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이 수덕여관에서 3년간 머물며 그림을 그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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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덕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고승 지명(知命)이 처음 세우고 원효대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숭제(崇濟) 스님이 창건하고 나옹선사가 중수했다고도 전해진다. 근세에 들어서는 우리 불교를 지켜온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이 머물며 많은 후학을 배출했고, 우리나라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어 많은 수도승이 정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국보 제49호)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 시대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그밖에도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3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381호), 수덕사 칠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제181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내려오는 길,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도로 위를 뒹군다. 계절은 점점 깊어져 간다. 멀지않은 곳이라도 좋다. 일상에 지친 마음 잠시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떠남’이란 단어 앞에서 이미 홀가분해졌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