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산성(三年山城)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 사적 제235호)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3년간 쌓았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패권 다툼이 심했던 국경의 요충지로 축성시기와 축성기간, 동원된 인력, 성곽전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알려진 유일한 고대산성으로 당시 축성기법이 잘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에 470년 신라 자비왕 13년에 처음 쌓은 후 486년 소지왕 8년 3,000여 명의 장정을 동원해 중축했고, 742년 경덕왕 원년에 완성됐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레 약 1.68km의 이 산성은 오정산을 둘러싼 능선을 따라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동서쪽 성벽은 바깥쪽에 돌을 쌓고 안쪽에 흙으로 다진 내탁외축(內托外築) 방식이며, 남북쪽은 안팎에 돌을 쌓고 그 안에 돌을 채운 내외협축(內外夾築)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은 납작한 판돌을 이용해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번갈아가면서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매우 견고하며, 높이는 13~20m, 폭은 8~10m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성 안에는 서로 다른 4곳의 성문터와 7개의 옹성, 우물터, 연못터 등의 시설이 있고, 주위 암벽에 글도 새겨져 있다. 성문은 신라의 상대(上代)와 하대(下代)에 축조되었는데 상대 문지의 문지방석(門地枋石)에 수레바퀴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분석한 결과, 중심거리가 1.66m에 달하는 큰 수레가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1983년의 발굴 결과 삼국 시대에서 고려, 조선 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충청북도는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삼년산성을 청주 상당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등 내륙의 7개 산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에 있다.
주소: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보은 속리 정이품송·보은 서원리 소나무

< 보은 속리 정이품송 >

< 보은 서원리 소나무 >
벼슬을 가진 소나무, 보은 속리 정이품송(報恩 俗籬 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은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수령이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지에 걸리게 되자 가지를 위로 올려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자 가지를 오므려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나무이기도 하다. 외줄기로 곧게 자란 정이품송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솔잎혹파리와 강풍으로 등 각종 재해를 입어 많이 상했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해 놓았지만 당당한 그 모습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정부인송(貞夫人松)’이라 불리는 보은 서원리 소나무(報恩 書院里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352호)가 있다. 정이품송과 마찬가지로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15m로 지상 84cm 높이에서 2갈래로 갈라졌고,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각각 3.3m, 2.9m이며 우산모양으로 아름답게 옆으로 퍼져 있다.
한편 충북 산림환경연구소는 지난 2002년도에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받아 인공수분을 시켜 후계목을 길러내고 있으며, 2012년에는 광릉(光陵, 사적 제187호)에 기념식수도 했다.
주소: 충북 보은군 솔리산면 상판리 17-3 / 충북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 49-4
삼년산성(三年山城)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 사적 제235호)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3년간 쌓았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패권 다툼이 심했던 국경의 요충지로 축성시기와 축성기간, 동원된 인력, 성곽전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알려진 유일한 고대산성으로 당시 축성기법이 잘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에 470년 신라 자비왕 13년에 처음 쌓은 후 486년 소지왕 8년 3,000여 명의 장정을 동원해 중축했고, 742년 경덕왕 원년에 완성됐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레 약 1.68km의 이 산성은 오정산을 둘러싼 능선을 따라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동서쪽 성벽은 바깥쪽에 돌을 쌓고 안쪽에 흙으로 다진 내탁외축(內托外築) 방식이며, 남북쪽은 안팎에 돌을 쌓고 그 안에 돌을 채운 내외협축(內外夾築)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은 납작한 판돌을 이용해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번갈아가면서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매우 견고하며, 높이는 13~20m, 폭은 8~10m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성 안에는 서로 다른 4곳의 성문터와 7개의 옹성, 우물터, 연못터 등의 시설이 있고, 주위 암벽에 글도 새겨져 있다. 성문은 신라의 상대(上代)와 하대(下代)에 축조되었는데 상대 문지의 문지방석(門地枋石)에 수레바퀴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분석한 결과, 중심거리가 1.66m에 달하는 큰 수레가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1983년의 발굴 결과 삼국 시대에서 고려, 조선 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재 충청북도는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삼년산성을 청주 상당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등 내륙의 7개 산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에 있다.
주소: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보은 속리 정이품송·보은 서원리 소나무
< 보은 속리 정이품송 >
< 보은 서원리 소나무 >
벼슬을 가진 소나무, 보은 속리 정이품송(報恩 俗籬 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은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수령이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지에 걸리게 되자 가지를 위로 올려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자 가지를 오므려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나무이기도 하다. 외줄기로 곧게 자란 정이품송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솔잎혹파리와 강풍으로 등 각종 재해를 입어 많이 상했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해 놓았지만 당당한 그 모습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정부인송(貞夫人松)’이라 불리는 보은 서원리 소나무(報恩 書院里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352호)가 있다. 정이품송과 마찬가지로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15m로 지상 84cm 높이에서 2갈래로 갈라졌고,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각각 3.3m, 2.9m이며 우산모양으로 아름답게 옆으로 퍼져 있다.
한편 충북 산림환경연구소는 지난 2002년도에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받아 인공수분을 시켜 후계목을 길러내고 있으며, 2012년에는 광릉(光陵, 사적 제187호)에 기념식수도 했다.
주소: 충북 보은군 솔리산면 상판리 17-3 / 충북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 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