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숨결이 오롯이 남아있는 경주. 수학여행, 신혼여행, 가족여행 저마다 가슴에 추억을 하나씩 안고 또 다시 찾게 된다. 발길 닿은 곳마다 문화유산으로 가득 한 경주는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여행코스도 다양하게 마련해 놓았다. 이번 여정에선 편안하게 걸으며 경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곳으로.

11면-기행, 경주 동궁과 월지.JPG
< 경주 동궁과 월지 >
‘임해전지’ ‘안압지’라고도 부르는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과 月池, 사적 제18호, 경북 경주시 )는 통일신라 시대 별궁 터로, 임해전(臨海殿)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다. ‘안압지(雁鴨池)’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이곳은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이곳을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이곳은 인공연못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도록 배수로를 만들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든 연못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연못 주변에 각을 주어 꺾기도 하고 돌출시키기도 해 작은 연못이 한없이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 당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당시 귀족들의 풍류를 보여주는 주사위, 유리잔, 우리나라 최초의 목선 등이 출토되었고, 대접이나 접시 등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것들도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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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계림 >
경주 계림(慶州 鷄林, 사적 제19호, 경북 경주시 구화산길 329)은 경주김씨(慶州金氏)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신성한 숲으로 신라 천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원래 ‘시림(始林)’이라고 했는데 김알지가 태어난 후 계림이라고 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0년(탈해왕 4) 8월에 호공(瓠公)이 한밤중에 반월성 근처를 지나가는데 시림 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그곳에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걸려 있었다. 다음 날 왕에게 아뢨더니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해 열어보니 그 속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 이름은 ‘알지’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국보 제31호)와 신라 궁궐의 도성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사적 제16호) 사이에 위치한 이 숲은 다른 숲과는 달리 평평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숲의 면적은 약 7,300㎡로, 물푸레나무, 왕버들, 느티나무 등 고목들이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한 가운데로 작은 개천이 돌아 흐른다. 계림 숲 경내에는 비가 있는데 이 비는 조선 시대 순조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천 년의 세월을 머금은 고목 사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로 이런 착각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아닐런지.
신라 천년의 숨결이 오롯이 남아있는 경주. 수학여행, 신혼여행, 가족여행 저마다 가슴에 추억을 하나씩 안고 또 다시 찾게 된다. 발길 닿은 곳마다 문화유산으로 가득 한 경주는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여행코스도 다양하게 마련해 놓았다. 이번 여정에선 편안하게 걸으며 경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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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동궁과 월지 >
‘임해전지’ ‘안압지’라고도 부르는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과 月池, 사적 제18호, 경북 경주시 )는 통일신라 시대 별궁 터로, 임해전(臨海殿)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다. ‘안압지(雁鴨池)’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이곳은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이곳을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이곳은 인공연못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도록 배수로를 만들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든 연못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연못 주변에 각을 주어 꺾기도 하고 돌출시키기도 해 작은 연못이 한없이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 당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당시 귀족들의 풍류를 보여주는 주사위, 유리잔, 우리나라 최초의 목선 등이 출토되었고, 대접이나 접시 등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것들도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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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계림 >
경주 계림(慶州 鷄林, 사적 제19호, 경북 경주시 구화산길 329)은 경주김씨(慶州金氏)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신성한 숲으로 신라 천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원래 ‘시림(始林)’이라고 했는데 김알지가 태어난 후 계림이라고 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0년(탈해왕 4) 8월에 호공(瓠公)이 한밤중에 반월성 근처를 지나가는데 시림 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그곳에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걸려 있었다. 다음 날 왕에게 아뢨더니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해 열어보니 그 속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다.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을 ‘김’, 이름은 ‘알지’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국보 제31호)와 신라 궁궐의 도성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사적 제16호) 사이에 위치한 이 숲은 다른 숲과는 달리 평평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숲의 면적은 약 7,300㎡로, 물푸레나무, 왕버들, 느티나무 등 고목들이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한 가운데로 작은 개천이 돌아 흐른다. 계림 숲 경내에는 비가 있는데 이 비는 조선 시대 순조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천 년의 세월을 머금은 고목 사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로 이런 착각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