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에 있는 아시시(Assisi)는 수바시오(Subasio) 산 아시오(Asio)라는 구릉에 건설된 중세 도시이다. 아시시는 로마 시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이면서 성소(聖所)로서 유지되어 왔다.
이곳은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1182~1266)가 태어난 곳이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창립된 곳으로, 특히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이탈리아와 유럽, 전 세계의 예술과 건축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 프란체스카 성당과 프란체스카의 말 탄 동상>

<아시시 언덕에서 내려다 본 풍경>
중세의 향기가 고요히 흐르는 고대 도시 아시시는 기원전 1세기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까지 이어지는 미네르바 신전과 코무네 광장 지역의 중요한 성지뿐만 아니라 극장, 목욕탕, 기타 공공건물들과 주거지가 길게 늘어선 형태로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다. 이 도시의 성벽은 길이가 2,300m 정도이고, 약 55㏊의 초지로 둘러싸여 있다. 주거지의 면적과 기원전 89년에 자치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사실로 종교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의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아시시는 기원후 3세기부터 새로운 천년이 시작될 때까지의 건축물의 증거가 없지만 이곳은 항상 종교와 관련이 있었다. 11~14세기에 이르러 아시시는 네 곳의 주요 지점에 개발이 집중되는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즉, 메르카토(Mercato) 광장, 무로룹토(Murorupto),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산루피노(San Rufino) 지역이다. 시장 지역은 귀족 가문의 중심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회들(성니콜라 교회, 성파올로 교회, 성아가타 교회)이 세워지게 된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이곳에서 태어난 성 프란체스코가 아시시에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립하게 되고, 1228년에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동료였던 클라라 역시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프란체스코회에 수녀회를 창립하면서 이곳은 종교의 종심지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 프란체스카 성당>
1228년에 건축을 시작한 성 프란체스코 성당 1층은 정교한 고딕 양식의 문을 통해 들어가며 성당 내부는 전체가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253년에 무명의 화가 ‘성 프란체스코의 거장(Maestro di San Francesco)’이 그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토와 그의 유파가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풍자 그림들, 치마부에가 그린 《왕좌에 앉은 아이를 안은 처녀(Virgin with a child on the throne)》, 조토의 《십자가(Crucifixion)》, 피에트로 로렌체티(Pietro Lorenzetti)와 그의 조수들이 그린 그림들,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의 《마르틴 예배당(Chapel of St-Martin)》이 있다. 2층 성당의 거대한 동쪽 면은 흰색 석회암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 커다란 장미창(薔薇窓)이 있다. 내부의 벽면은 성인의 신앙과 삶에 대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골목 사이로 보이는 성루피노 대성당>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성 루피노 대성당>
8세기에 건립된 성 루피노(San Rufino) 대성당은 1036년 무렵 우고네(Ugone) 주교가 대성당으로 다시 지었다. 서쪽 면은 움브리아 지방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대성당과 스폴레토의 성피에트로 교회와 연관성이 있다. 교회의 내부는 1571년에 단순한 르네상스 형태로 갈레아초 알레시(Galeazzo Alessi)에 의해 전면적으로 재건축되었다.
수바시오 산 계곡에 자리 잡은 카르체리(Carceri) 수도원은 원래 성 프란체스코와 그의 동료들을 위한 동굴로 이루어져 있었다. 15~19세기 초에 세인트 그로토(saint’s grotto) 수도원 자리에 작은 수녀원이 서서히 지어졌다.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수도원 단지는 성 프란체스코의 종교적 각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또한 성 클라라의 수녀원이 된 이곳은 그녀가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Santa Maria degli Angeli) 성당은 원래의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 예배당을 보호하기 위해 16세기에 갈레아초 알레시가 설계한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전도단에게 명령을 보내던 이곳에서 훗날 임종하였다. 리보토르토(Rivotorto) 성지에 있는 중세의 작은 복합 건물은 유물로서, 그리고 프란체스코의 순례지로서 보존되고 있다.

<코무네 광장과 템피오 사원>

<고대 도시 아시시 풍경>

고대 도시 아시시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곳에서 성 프란체스코와 성 클라라의 시신이 발견되어 건축 활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다. 산 다미아노와 산 마리아 디 리보토르토(S. Maria di Rivotorto) 수녀원도 재건되고, 아시시의 중심 코무네(Comune) 광장에 새로운 우체국이 건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아시시에는 새로운 관심이 쏟아져 역사적 도시와 그 주변부를 보호하는 장려책이 마련되어 1954년에 아시시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보존 설계 계획을 받았다. 동시에 이 자치 도시 전체가 자연 보호의 적용을 받게 되었으며, 드디어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료제공= 유네스코와 유산,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1992-2016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에 있는 아시시(Assisi)는 수바시오(Subasio) 산 아시오(Asio)라는 구릉에 건설된 중세 도시이다. 아시시는 로마 시대에서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이면서 성소(聖所)로서 유지되어 왔다.
이곳은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1182~1266)가 태어난 곳이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창립된 곳으로, 특히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이탈리아와 유럽, 전 세계의 예술과 건축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 프란체스카 성당과 프란체스카의 말 탄 동상>
<아시시 언덕에서 내려다 본 풍경>
중세의 향기가 고요히 흐르는 고대 도시 아시시는 기원전 1세기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까지 이어지는 미네르바 신전과 코무네 광장 지역의 중요한 성지뿐만 아니라 극장, 목욕탕, 기타 공공건물들과 주거지가 길게 늘어선 형태로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다. 이 도시의 성벽은 길이가 2,300m 정도이고, 약 55㏊의 초지로 둘러싸여 있다. 주거지의 면적과 기원전 89년에 자치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사실로 종교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의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아시시는 기원후 3세기부터 새로운 천년이 시작될 때까지의 건축물의 증거가 없지만 이곳은 항상 종교와 관련이 있었다. 11~14세기에 이르러 아시시는 네 곳의 주요 지점에 개발이 집중되는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즉, 메르카토(Mercato) 광장, 무로룹토(Murorupto),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산루피노(San Rufino) 지역이다. 시장 지역은 귀족 가문의 중심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회들(성니콜라 교회, 성파올로 교회, 성아가타 교회)이 세워지게 된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이곳에서 태어난 성 프란체스코가 아시시에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립하게 되고, 1228년에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동료였던 클라라 역시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프란체스코회에 수녀회를 창립하면서 이곳은 종교의 종심지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 프란체스카 성당>
1228년에 건축을 시작한 성 프란체스코 성당 1층은 정교한 고딕 양식의 문을 통해 들어가며 성당 내부는 전체가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253년에 무명의 화가 ‘성 프란체스코의 거장(Maestro di San Francesco)’이 그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토와 그의 유파가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풍자 그림들, 치마부에가 그린 《왕좌에 앉은 아이를 안은 처녀(Virgin with a child on the throne)》, 조토의 《십자가(Crucifixion)》, 피에트로 로렌체티(Pietro Lorenzetti)와 그의 조수들이 그린 그림들,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의 《마르틴 예배당(Chapel of St-Martin)》이 있다. 2층 성당의 거대한 동쪽 면은 흰색 석회암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 커다란 장미창(薔薇窓)이 있다. 내부의 벽면은 성인의 신앙과 삶에 대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골목 사이로 보이는 성루피노 대성당>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성 루피노 대성당>
8세기에 건립된 성 루피노(San Rufino) 대성당은 1036년 무렵 우고네(Ugone) 주교가 대성당으로 다시 지었다. 서쪽 면은 움브리아 지방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대성당과 스폴레토의 성피에트로 교회와 연관성이 있다. 교회의 내부는 1571년에 단순한 르네상스 형태로 갈레아초 알레시(Galeazzo Alessi)에 의해 전면적으로 재건축되었다.
수바시오 산 계곡에 자리 잡은 카르체리(Carceri) 수도원은 원래 성 프란체스코와 그의 동료들을 위한 동굴로 이루어져 있었다. 15~19세기 초에 세인트 그로토(saint’s grotto) 수도원 자리에 작은 수녀원이 서서히 지어졌다.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수도원 단지는 성 프란체스코의 종교적 각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또한 성 클라라의 수녀원이 된 이곳은 그녀가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Santa Maria degli Angeli) 성당은 원래의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 예배당을 보호하기 위해 16세기에 갈레아초 알레시가 설계한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전도단에게 명령을 보내던 이곳에서 훗날 임종하였다. 리보토르토(Rivotorto) 성지에 있는 중세의 작은 복합 건물은 유물로서, 그리고 프란체스코의 순례지로서 보존되고 있다.
<코무네 광장과 템피오 사원>
<고대 도시 아시시 풍경>
고대 도시 아시시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곳에서 성 프란체스코와 성 클라라의 시신이 발견되어 건축 활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다. 산 다미아노와 산 마리아 디 리보토르토(S. Maria di Rivotorto) 수녀원도 재건되고, 아시시의 중심 코무네(Comune) 광장에 새로운 우체국이 건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아시시에는 새로운 관심이 쏟아져 역사적 도시와 그 주변부를 보호하는 장려책이 마련되어 1954년에 아시시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보존 설계 계획을 받았다. 동시에 이 자치 도시 전체가 자연 보호의 적용을 받게 되었으며, 드디어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료제공= 유네스코와 유산,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1992-2016